[서울=뉴시스 남주현 기자] = 지난해부터 원·달러 환율이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외환보유액에 대한 우려가 부쩍 늘었습니다. 외환보유액은 국가 비상 등 경제 위기에 비축해 놓은 외화 자산을 의미합니다.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 생길 경우 외환당국은 외환보유액을 사용해 경제를 지킬 수 있어 ‘외환 방파제’라는 별명을 갖고 있죠.
우리나라가 외환보유액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게 된 것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이 200억 달러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우리나라는 큰 경제적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때부터 외환보유액의 중요성이 강조됐고, 외환당국도 꾸준히 외환보유액을 늘려 위기 상황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실제 외환보유액은 경제 위기 상황에서 환율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환율이 급격한 쏠림이 생길 때는 보유액을 사용해 환율을 진정시킬 수 있죠. 특히 외환보유액이 충분할 경우 대외신인도가 높아질 수 있습니다. 해외 투자를 이끌어 내는데 장점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 때문에 외화보유액은 쌓으면 쌓을수록 좋다고 알려집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에 비춰 적절한 외환보유액은 얼마일까요. IMF는 연간 수출액의 5%와 통화량(M2)의 5%, 유동외채의 30%, 외국인 주식투자의 15%를 더한 값의 100~150%를 적정 외환보유액으로 제시합니다. 이 경우 4000억 달러 내외가 됩니다. 외국인 주식투자의 3분의 1에 거주자 외화예금을 추가한 BIS(국제결제은행) 기준으로는 6000억 달러 가량이 되죠.
문제는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4000억 달러를 소폭 웃도는데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환율이 요동칠 때 사용하게 되면 국제 기준보다 떨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특히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외환보유액은 계속해서 줄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 4692억 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한 외환보유액은 지난해 말 4156억 달러로 급감했습니다.
더구나 최근 환율이 1450원대에 육박하고 높은 변동성을 보이면서 외환보유액에 대한 우려는 더욱 높아졌습니다. 비상 계엄과 탄핵 사태 등에 환율이 요동쳤던 지난해 12월에는 우려와 달리 금융권의 BIS비율 충족을 위한 예치금 증가와 국민연금 환헤지, 전술적 자산배분 등에 외환보유액에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1월에는 예치금이 다시 빠지는 계절적 효과가 나타나고 국민연금 환헤지 효과도 줄어든다는 위험이 있습니다. 반면 환율은 더 상승해 이달 중순에는 1470원대까지 올랐습니다. 트럼프 취임에 따른 환율 급등락에 외환당국이 외환보유액을 털어 환율 진정에 나섰다가는 외환보유액이 다시 4000억 달러 밑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이런 가운데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다수의 신흥국에서 환율방어를 위해 외환보유액을 소진하다가 외환위기가 발생했다”는 경고를 내놨습니다. 외환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보유한 달러를 매도하고 원화를 사들일 경우 IMF처럼 국가 부도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실제 고환율과 높은 변동성에 대한 우려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내외 기관들이 트럼프 정책과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등에 올해 상반기에도 환율이 1450원을 전후로 높은 변동성을 보일 것으로 예상합니다. 노무라증권은 아예 올해 3분기 원·달러가 1500원대까지 치솟을 것이란 전망을 내놨습니다.
외환당국의 고민도 깊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두고보자니 환율이 1500원대까지 치솟을 수도 있고, 외환보유액을 써서 막자니 4000억 달러 하회 위험이 있습니다. 딜레마에 처한 외환당국의 지혜로운 판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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