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오수환 기자] 국내 디지털자산(가상자산) 시장의 가격 변동성을 완화하고 시장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시장조성자(Market Maker)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낮은 유동성과 불안정한 구조로 인해 글로벌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시장조성자는 매수・매도 호가를 지속적으로 제공해 거래 유동성을 제공하고 가격 변동성을 줄이는 참여자를 의미한다. 하지만 현재 국내 디지털자산 시장은 법인 투자자의 거래를 위한 실명계정 발급이 사실상 차단돼 있어 구조적으로 시장 조성자 활동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코빗 리서치 센터는 지난 24일 ‘Market Maker, 시장 유동성의 열쇠’ 보고서를 통해 “디지털자산 시장은 전통 금융 시장에 비해 유동성이 낮고 변동성이 낮아 거래량이 부족한 많은 알트코인에서 슬리피지와 스프레드 확대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라며 “시장조성자 도입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슬리피지는 투자자가 주문한 가격과 실제 체결 가격의 차이를, 스프레드는 매수 호가와 매도 호가의 차이를 의미한다. 둘 모두 유동성이 부족하거나 시장이 비효율적일 때 발생하는 문제다. 시장조성자는 매수·매도 호가를 꾸준히 제시해 유동성을 높이고 거래 환경을 안정시켜 투자자들이 더 효율적으로 거래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예를 들어 예상치 못한 기업 실적 발표와 같은 충격은 주식의 가치 평가에 큰 변화를 일으켜 매수나 매도 주문이 한쪽으로 몰려 시장 유동성이 급격히 줄어들 수 있다. 이때 시장조성자는 유동성을 공급하는 제도로 작동해 거래 상대가 없는 주문을 받아들이고 시장이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완화한다.
이러한 장점으로 시장조성자는 전통 금융시장에서 유동성 공급, 공정한 가격 형성, 가격 변동성 완화를 통해 금융 시스템의 효율성과 안정성을 강화하는 데 기여해 왔다. 코빗 리서치에 따르면 대표적으로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지정시장조성자(Designated Market Maker, DMM)와 나스닥(Nasdaq)의 시장조성자 모델(Market Maker)이 차용되고 있다.
특히 해외에서는 전통금융 시장 뿐만 아니라 디지털자산 시장에서도 적극적으로 시장조성자가 활용되고 있다. 미국 기반 디지털자산 거래소 코인베이스는 유동성 프로그램을 통해 저유동성 거래쌍을 지원해 유동성 개선을 위한 다양한 인센티브 정책을 운영한다. 디지털자산 마켓 메이킹 업체 윈터뮤트도 전통 금융시장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60개 이상의 중앙화 및 탈중앙화 거래소에서 활동하며 신규 프로젝트나 알트코인에 유동성을 제공하고 있다.
코빗 리서치는 “해외 거래소의 시장조성자 프로그램은 수수료 혜택을 넘어 거래소 유동성을 체계적으로 관리해 투자자에게 신뢰도 높은 효율적인 거래 환경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내 디지털자산 시장은 법인 투자가 제한돼 있어 시장 조성자 활동이 불가능한 실정이다.
김민승 코빗리서치 센터장은 “현재 국내 디지털자산 시장은 합법적인 시장조성자 활동을 정의하고 이를 지원할 제도적 장치가 부족한 상황”이라며 “이에 시장 참여자들은 시장조성자 활동을 자전거래(wash trading)와 같은 비합법적 행위로 오인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에 보고서는 ‘시장조성자’와 ‘코인시장 MM’에 대한 구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시장조성자는 규제와 투명성을 기반으로 시장 신뢰를 높이고 효율적인 거래 환경을 조성하지만 코인 시장 MM은 거래량 조작과 가격 왜곡을 목적으로 활동해 본질적으로 시장조성자와 성격이 다르다. 코인 MM은 자전거래를 통해 거래량을 부풀리거나 특정 가격에 의도적으로 개입해 시장 왜곡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김 센터장은 “코인 MM은 정당한 유동성 공급 활동마저 의심받게 해 시장 신뢰를 저해한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혁신금융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디지털자산 시장에 시장조성자를 우선 도입하고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디지털자산 매도·매수업 라이선스를 발급하는 등 자본시장법과 차별화된 법률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시장조성자가 유동성을 공급하거나 대량으로 디지털자산을 거래하더라도, 행위 자체가 아닌 그 목적, 수단, 계획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불공정거래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위법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며 “이를 위해 적법한 시장조성자를 판단할 수 있는 거래 빈도, 거래량, 거래 목적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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