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시스 안호균 기자] 올해 경제성장률이 1%대에 그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확산되면서 확장적 재정·통화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점차 힘을 얻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빠르게 통상정책을 전환하면서 우리 경제를 강타할 부정적 영향이 예상보다 거셀 것이란 우려 역시 커진다.
야당을 중심으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촉구하며 재정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지만 중앙은행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11일 한국경제연구원(KDI)에 따르면 KDI는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0%에서 1.6%로 수정했다. 올해 국내 주요 기관이 제시한 전망치 중 가장 낮은 수치다.
대내적으로는 정국 불안에 따른 경제심리 위축이,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정책 변화에 따른 통상 환경 악화가 경제성장률 하향 조정의 주요인으로 작용했다고 KDI는 설명했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브리핑에서 “다수의 기관에서 1%대 중후반의 성장률을 예상하고 있다는 점에서 올해 경기가 기존보다는 둔화되는 국면인 것은 틀림없다”며 “재정 적자를 코로나19 이후에도 상당 폭 유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성장세가 떨어진다는 것은 재정만으로 우리 성장세 하락을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실장은 “지금 중립금리(물가를 자극하지도 둔화시키지도 않는 이상적인 정책금리)를 대략 2%대 중반 정도라고 생각하면 현재 기준금리(3.0%)는 높은 수준이라고 본다. 어려운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최소 2~3차례 정도 내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고 부연했다.
특히 KDI는 추경보다는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현재 경제 상황이 국가재정법상 추경 요건(전쟁, 대규모 재해, 경기침체 등)에 해당하는지 확신할 수 없고, 경기 부양 효과도 추경보다 금리 인하가 더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통화정책을 책임지는 한국은행의 상화 인식은 다소 다르다. 대내외 불안 요인으로 환율이 급등한 상황에서 정책금리를 급격히 인하할 경우 원화 매도와 자금 유출 압력이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과 한국의 정책금리는 각각 4.5%와 3.0%로 1.5%포인트(p)의 격차가 있다.
한은은 3.5%의 기준금리를 유지하다 지난해 10월과 11월 두차례 연속 금리를 인하했다. 하지만 1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는 금리를 3.0%로 동결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현재 금리 인하 사이클에 접어들었음을 인정하면서도 속도 조절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통화정책보다는 추경 편성 등 적극적인 재정 정책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라는 인식이다.
이 총재는 최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통화정책 변화의 적절한 시기와 강도를 정하는 것은 금통위원들에게 중요한 문제”라며 “원화 가치가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면 불에 기름을 끼얹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하강기에 정부와 중앙은행은 서로 상대방이 더 적극적으로 정책 수단을 동원해주길 바라는 경향이 있다. 두 기관은 모두 경제 성장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지만 각자가 방어해야 할 영역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재정 건전성이, 한은은 물가와 금융 안정이 훼손되는 것을 더 경계한다.
하지만 국내 정치 불안에 이어 미국의 통상 정책 변화가 우리 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이 가시화되면서 추경 뿐만 아니라 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강해졌다. 이미 시장에서는 2월 금리 인하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한국투자증권은 이 총재의 최근 발언이 원론적 성격으로 보인다면서 2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가 인하될 것으로 전망했다. 또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바클리스, 씨티,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투자은행(IB) 8곳은 한은이 올해 상반기 기준금리를 2.5%까지 두 차례 인하할 것으로 전망했다.
현 시점에서는 환율 상승 우려보다는 경기 대응 필요성에 더 큰 비중을 두고 통화 정책을 운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한은 안팎에서 나온다.
신성환 한은 금통위원은 1월 금통위에서 유일하게 ‘금리 인하’ 소수의견을 냈다. 한은이 공개한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신 위원은 “금리 인하가 환율에 상승 압력을 줄 수 있지만 통상적으로 국내 금리 조정에 따른 내외금리차 변동이 환율에 미치는 영향은 대외 요인에 비해 작게 분석된다”고 말했다.
신 위원은 “외화차입 가산금리와 CDS(신용부도스와프) 프리미엄이 낮은 수준을 지속하며 외화자금 조달 여건이 양호한 상황”이라며 “정치 불안이 크게 확대되지 않는다면 국내 요인으로 인한 환율의 급격한 상승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나타나고 있는 달러 강세는 글로벌 외환시장 전반의 움직임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오건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단장은 지난달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슈로 글로벌 시장 전체에서 달러가 강해졌다”며 “트럼프 행정부에서 관세 정책을 세게 쓰겠다고 하니 미국 이외 국가들은 달러 강세를 어느 정도 받아들이면서 금리 인하를 통해 수출 충격 등으로 나타날 수 있는 저성장에 미리 대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 단장은 “우리나라도 변동성이 높아지지 않는다면 환율이 어느 정도 높은 수준이더라도 국내 내수 경기가 크게 흔들리는 것에 대응하기 위해 기준금리 인하의 가능성을 높여놓을 수 있다”며 “원화가 약해진다고 무조건 큰일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다른 나라와의 균형도 같이 보면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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