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뉴스) 이지헌 특파원 = 미국 자산운용사들이 운용하는 상장지수펀드(ETF)가 기관투자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사모대출펀드, 추세추종 전략펀드 등 대체투자 자산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ETF는 전문투자자뿐만 아니라 일반 개인투자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 증권당국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28일(현지시간)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등에 따르면 순자산의 80% 이상을 투자등급 사모대출 증권에 투자하는 ‘SPDR SSGA 아폴로 공모·사모 크레디트'(종목코드 PRIV) ETF가 전날 뉴욕증시에 상장돼 거래를 시작했다.
미 대형 자산운용사인 스테이트스트리트가 사모대출 투자로 유명한 대형 헤지펀드 아폴로 글로벌매니지먼트와 협업해 내놓은 상품으로, 사모대출 상품이 공모 ETF 상품으로 출시된 것은 이 상품이 처음이다.
최근 몇 년 새 월가에서는 대형 헤지펀드를 중심으로 대체 자산인 사모대출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해왔다.
미 금융당국이 대형 은행을 상대로 건전성 규제를 강화하면서 월가의 대형 은행들이 우량 대출에만 치중해온 사이 비은행 금융회사들이 규제로 생겨난 빈틈을 파고들었던 탓이다.
한국은행 뉴욕사무소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사모대출 규모는 2018년 7천300억달러(약 1천조원)에서 2022년 1조5천억달러(약 2천200조원)로 급성장했는데, 이 가운데 약 70%가 미국에서 취급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팬데믹 이후 고금리와 함께 양호한 경기 환경이 이어지면서 사모대출 펀드들이 뛰어난 성과를 기록해왔지만, 자산의 특성상 기관투자자가 아닌 일반 개인투자자는 접근이 제한적이었다.
스테이트스트리트의 애나 팔리아 최고사업책임자(CBO)는 전날 PRIV ETF의 상장과 함께 낸 보도자료에서 “역사적으로 ETF는 크건 작건 모든 투자자에게 동등한 시장 기회를 제공하는 데 활용돼왔다”며 “ETF 덕분에 모든 투자자는 전통적으로 유동성이 낮은 시장 부문에 투명하게 접근할 수 있게 됐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PRIV는 사모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민주화(democratizing)하는 사명을 지속해서 수행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미 증권 당국은 사모대출과 같은 대체 자산이 ETF로 출시돼 일반 개인투자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에 우려를 지속하고 있다.
SEC는 27일 공개된 서한에서 스테이트스트리트와 아폴로에 PRIV ETF에 관한 추가 정보를 제공하라고 요구했다.
SEC는 서한에서 펀드의 유동성 문제와 가치평가 방법에 여전히 의구심이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펀드명에 아폴로의 이름이 병기된 것에도 투자자들에 오해를 초래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월가에서는 유동성이 떨어지는 기초자산을 토대로 시장에서 실시간으로 사고팔 수 있는 ETF를 출시할 경우 유동성 불일치로 시장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왔다.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미 운용사들의 ETF 시장 확대는 사모자산 외 다른 대체 자산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추세추종 투자전략을 펴는 헤지펀드들이 ETF와의 경쟁에 직면하고 있다고 28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을 비롯해 인베스코, 피델리티가 최근 추세추종 전략을 토대로 하는 일명 ‘매니지드 선물'(Managed futures) ETF의 출시를 위해 증권신고서를 제출했다.
추세추종 전략이란 주가지수, 원자재, 채권 등 다양한 선물 계약 가격의 상승 또는 하락 흐름에 베팅하는 투자전략을 말한다. 경기 상황과 무관하게 수익을 창출할 수 있어 기관투자자들이 대체투자 대상으로 많이 활용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CTA(상품거래자문사)로도 불리는 추세추종 헤지펀드들이 운용하는 자산 규모는 총 3천400억 달러(약 500조원)에 이른다.
현재도 중소 운용사가 출시한 CTA 전략 ETF가 미 증시에 상장돼 있다. 총운용 규모는 33억 달러(약 4조8천억원) 수준으로, 1년 새 두 배 수준으로 급성장했다고 블룸버그는 설명했다.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아직 시장 규모는 작지만 대체자산 ETF는 헤지펀드와 비교해 운용 수수료가 낮다는 점에서 헤지펀드 전략과 유사한 ETF의 출시는 관련 업계에 잠재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헤지펀드는 통상 ‘2/20′(2% 운용수수료 및 20% 초과성과 수수료)라고 불리는 높은 수수료를 부과하는 반면, ETF의 운용수수료는 1%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월라크베스 캐피털의 모힛 바자지 ETF 디렉터는 “더 많은 참가자가 시장에 진입하면서 더 낮은 비용의 상품을 제공하려 할 것”이라며 “만약 ETF 상품들이 헤지펀드보다 더 나은 성과를 낸다면 더 많은 자산을 유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p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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