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소비자들, 관세發 가격 인상 며칠 내 체감할 것” 우려
“에너지·장바구니 물가에 직격탄”…경기지표 곳곳 이미 둔화 신호
WSJ “美, ‘관세맨’ 트럼프가 초래할 경제적 위험 상황에 직면하게 돼”
(뉴욕=연합뉴스 이지헌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부터 캐나다를 비롯해 멕시코,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 부과 방침을 확인한 가운데 전문가들은 관세정책이 트럼프 대통령이 약속한 ‘미국의 번영’을 가져오기보다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와 미국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한다.
특히 최근 들어 미국의 경제 성장세가 둔화하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지표들이 속속 나오고 있어 관세 부과에 따른 부정적 여파가 상대국에 우선적으로 타격을 주겠지만 미 경제에도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속 경기침체) 위험을 키울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멕시코와 캐나다를 상대로 한 25% 관세 부과가 미 산업계에 미칠 부정적 파급효과에 관한 구체적인 연구분석은 최근 들어 속속 나오고 있다.
경제분석업체 앤더슨이코노믹그룹은 최근 보고서에서 멕시코와 캐나다에 예고한 관세가 시행될 경우 3열 풀사이즈 SUV 가격이 9천 달러(약 1천300만원) 오르고, 크로스오버 전기차의 경우 최대 1만2천200달러(약 1천800만원) 오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과 멕시코, 캐나다의 자동차 업계 공급망이 긴밀하게 연결된 상황에서 고율 관세 부과는 결국 소비자에게 가격 인상 부담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지적이다.
포드의 짐 팔리 최고경영자(CEO)도 지난달 자동차 업계 행사에서 “캐나다와 멕시코에 25% 관세가 부과되면 미 자동차 업계는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노골적으로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관세 부과의 부정적 충격은 특정 산업에 국한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수 경제학자는 관세가 부과 대상국은 물론 미국의 성장률을 함께 낮추고 물가상승률마저 높이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미 싱크탱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워윅 맥키빈 선임 위원은 지난 1월 보고서에서 멕시코·캐나다에 25% 관세 부과 시 미국의 성장률을 2026∼2029년 매년 0.2%포인트가량 낮추고, 2025년 인플레이션을 0.43%포인트 높이는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추산했다.
미국보다 경제 규모가 작은 멕시코와 캐나다, 중국은 관세 여파로 미국보다 더 큰 타격을 받겠지만 관세 부과가 미국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도 적지 않다고 본 것이다.
관세 부과 상대국의 보복 조치 예고는 이 같은 ‘부메랑 효과’의 가능성을 더욱 높이는 대목이다.
캐나다 정부는 3일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강행 의사를 재확인한 뒤 성명을 내고 4일 미국의 관세가 발효될 경우 총 1천550억 캐나다 달러(약 156조원) 상당의 미국산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보복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이 4일 관세 부과를 시행하면 같은 날 300억 캐나다 달러 상당의 미국산 수입품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고 21일 이내에 추가로 1,250억 캐나다달러 상당 수입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한다는 방침이다. 이 밖에 여러 비관세 조치도 고려하겠다고 캐나다 정부는 밝혔다.
멕시코는 아직 구체적인 대응책을 발표하진 않았지만, 보복 관세 부과도 배제하지 않는 분위기다.
멕시코의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대통령도 그간 여러 차례 기자회견에서 “냉철함을 유지한 채 미국의 판단을 지켜보고 있다”며 “우리는 플랜 A부터 D까지 다양한 대책을 준비 중”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전문가들은 멕시코·캐나다 관세 부과로 미국 내 에너지 가격과 장바구니 물가가 직격탄을 맞고 오를 것이란 관측을 내놓는다.
미 에너지정보청(EIA)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캐나다산 원유 수입량은 지난해 10월 기준 하루 460만 배럴에 달했다. 같은 기간 미국의 하루 원유 생산량 1천350만 배럴의 3분의 1에 달하는 규모다.
조너선 윌킨슨 캐나다 에너지·천연자원부 장관은 3일 미 CNBC 방송 인터뷰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 강행에 대해 “양측 모두 패배로 가는 제안”이라며 “미국 소비자들이 휘발유, 전기, 난방 가격의 상승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내 농산물 가격도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미국이 토마토, 아보카도, 레몬 등 주요 과일·농산물을 멕시코에서 대규모로 수입하는 데다 겨울철에는 수입 비중을 더욱 늘린다는 점에서 이번 관세 부과가 미국 슈퍼마켓 진열대의 신선식품 가격 인상을 곧바로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가 인플레이션을 초래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이런 우려를 일축해왔다.
미국 코넬대의 구스타보 플로레스-마시아스 정책학 교수는 이번 관세 부과로 미국 소비자들이 며칠 내 가격 인상을 체감할 수 있을 것이라며 “특히 자동차 산업은 상당한 부정적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공급망 붕괴뿐만 아니라 예상되는 차량 가격 인상이 수요를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경제에 부담을 지우는 가운데 최근 경제지표에선 미국의 성장세가 이미 둔화하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신호가 속속 감지되고 있다.
첫 번째로 감지된 것은 설문조사에서 나타난 경제주체들의 심리 악화다.
앞서 발표된 경제조사단체 콘퍼런스보드의 2월 미국의 소비자신뢰지수는 1월 대비 7포인트나 하락해 2021년 8월 이후 가장 큰 낙폭을 기록, 소비심리의 급격한 악화를 시사했다.
실제 소비 둔화도 지표로 확인되는 모습이다. 지난달 28일 발표된 1월 개인소비지출은 전월 대비 0.2% 감소해 팬데믹 시기인 2021년 2월(-0.6%) 이후 4년 만에 가장 큰 감소율을 기록했다.
이를 두고 한파나 산불 등 일회성 요인이 반영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적대국과 우방을 가리지 않는 관세 정책은 불법 이민자 추방 정책, 정부효율부(DOGE) 주도의 강도 높은 공공영역 구조조정 등과 맞물려 경제주체들에 큰 불확실성을 야기하고 있다.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연은)이 추산해 공개하는 성장률 전망모델 ‘GDP 나우’가 지난달 28일 올해 1분기 미국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2.3%(전기 대비 연율 환산)에서 -1.5%로 대폭 하향 조정한 것은 미 경제 성장세가 약화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가장 최근 사례다.
GDP 나우 전망은 초기 추정치일수록 업데이트 때마다 변동 폭이 큰 경향이 있지만, 월가 전문가들은 이번 수정 폭이 이례적으로 크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금융시장도 트럼프 경제정책이 초래할 경기 둔화 가능성 우려가 커지면서 주가가 하락하고 채권 가격은 상승(채권금리 하락)하는 식으로 반응하고 있다.
뉴욕증시에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3일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 캐나다, 중국에 대한 관세 부과 시행에 협상의 여지가 없다고 밝히면서 1.8% 하락 마감했다.
글로벌 채권의 벤치마크인 1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은 지난달 중순 심리적 저항선인 4.5%를 하향 돌파한 이후 하락 흐름을 지속하며 3일엔 4.1%대로 떨어졌다.
금융회사 SWBC의 크리스 브리게티 최고투자책임자는 이날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부과한 관세가 미국의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을 키울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미 경제 전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캐나다, 멕시코, 중국 대상 신규 관세 방침을 확인한 후 ‘트럼프가 택한 가장 어리석은 관세발(發) 주가폭락’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내고 우방국을 상대로 한 고율 관세 부과 결정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WSJ은 “본지는 얼마 전 멕시코와 캐나다 상대 관세를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무역전쟁’이라고 불러 트럼프 대통령을 격노하게 했는데, 이는 오히려 약한 표현일 수 있다”며 미국이 ‘관세맨'(Tariff Man) 트럼프 대통령이 초래할 경제적 위험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p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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