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명정선 기자] 최근 강남에서 열린 VC(벤처캐피탈) 모임. 30여명의 VC들을 대상으로 벤처들이 회사를 설명할 기회를 가졌다. 그 중 한 곳은 블록체인 관련 벤처기업이다.
설명회 직전 한 VC가 블록체인기업 대표에게 말을 건넸다. “블록체인 분야 기업들은 현재 지켜만 보고 있을뿐 투자는 안하고 있습니다. 다른 벤처캐피탈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설명을 하기도 전에 부정적인 얘기부터 들은 벤처기업 대표가 물었다. “왜 그렇죠?”
“LP(자금공급자)들이 싫어해요.” LP는 벤처들이 펀드를 만들 때 돈을 대주는 기관들이다.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한국벤처투자와 금융기관들이 벤처캐피탈이 펀드를 조성할 때 돈을 대주는 핵심 기관이다. 돈을 대주는 기관이 싫어하니 VC들은 당연히 블록체인 벤처에 투자하지 않는다.
정부가 블록체인을 지원한다고 하는데 이런 역설적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가 블록체인은 지원한다면서 블록체인과 붙어 있는 암호화폐는 사기의 온상 또는 돈세탁의 대상으로 백안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사례는 이같은 정부 태도가 시장에 어떻게 투영되는지를 보여준다.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은행송금 결제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벤처기업 A사의 사례다.
이 업체는 혁신적인 블록체인 기술로, 이미 시장에서 돈을 조달(ICO)한 여러 프로젝트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ICO가 금지되면서 투자처를 찾고 있다. VC로부터 투자를 받지 못한 이 업체는 국내에서 전략적 투자자를 물색했다. 기술력을 인정한 모 금융기관이 이 회사의 기술을 채택하면서 적은 금액이지만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조건이 붙었다. 코인과 연관 되면 투자금을 회수한다는 내용이었다. 정부 태도 때문에 규제당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금융기관이 붙인 조건이다.
ICO, 벤처투자, 거래선으로부터의 전략적 투자 등 대부분의 자금공급이 말라붙었다. 미래 가능성을 보고 투자하는 벤처들에게 외부자금이 수혈되지 않으면 고사할 수 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블록체인 벤처기업들은 현재 고사 위기다. 지역화폐등 공공부문의 제한된 발주물량을 수주하는 관납업체만 그나마 활로를 열어가고 있다.
위의 벤처기업 A사는 지금 회사분할 절차를 밟고 있다. 국내에서는 약간의 자금을 조달받아 SI업체로 명맥을 유지하고 해외로 나가 ICO를 하기 위해서다.
국내 블록체인 벤처가 국내에서 자금조달 하기 어려운 상황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한 VC는 “정부 정책의 명시적 변경이 있기 전에는 어쩔수 없다. 펀드를 만들면 해마다 운영수수료로 1.5%를 받는데 블록체인 기업들은 어차피 암호화폐와 연결되기 때문에 정부가 신호를 주지 않는 상황에서 어느 VC펀드가 블록체인 기업에 투자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같은 상황은 자금력이 있는 대기업과 금융기관들이 블록체인 산업을 선점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혁신 벤처기업 육성을 통해 경제에 새 살을 만들겠다는 정부의 정책철학이 블록체인 산업에는 적용되지 않고 기득권만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