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리올라 샤르도네, 깔끔하고 우아해
높은 도수가 주는 긴 피니시 인상적
다이아톰, 14.5도로 순수함 펼쳐보여
[블록미디어 권은중 전문기자] ‘13도.’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 부르고뉴 샤도네르나 뉴질랜드 쇼비뇽 블랑 화이트의 평균적인 알코올 도수다. 화이트 와인의 강도는 13도 정도면 충분하다. 그래야 우아하기 때문이다. 샴페인도 대체로 12.5~13도 정도다. 강한 산도와 조밀한 거품이 특징인 샴페인이 높은 알코올을 강조할 이유가 없다. 반면 레드는 14도 정도다. 적포도의 수확시기가 청포도에 견줘 늦기 때문에 당도가 좀더 높은 덕분이다.
와인의 알코올 도수는 당도가 결정된다. 공기 가운데 존재하는 자연 효모가-와이너리에 따라 정제 효모를 여기에 추가하기도 한다-포도의 당분을 먹고 알코올(에탄올)과 이산화탄소로 분해한다. 이론적으로는 1브릭스 당도의 포도에서 약 0.6%의 알코올이 생성된다. 알코올 도수 13도의 와인의 경우 이를 역산하면 약 22브릭스라는 포도의 당도가 나온다. 보통 양조용 포도의 브릭스는 20브릭스가 넘는다(우리나라 포도나 감으로 만드는 와인에 가당을 하는 이유다).
실제로 유럽이나 미국의 와인 포도밭에서 포도 알갱이를 따먹으면 단맛이 진해서 놀란다. 우리나라 과일로 즐기는 포도보다 훨씬 달다. 그래서 알코올의 도수가 높은 와인은 따뜻한 지역의 와인인 경우가 많다. 기온이 따뜻할수록 포도의 당도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도가 떨어져 맛이 부드럽다. 자연발효로 낼 수 있는 와인의 최고도수는 20도 내외다. 높은 알코올에 낮은 산도 탓에 ‘둥글다’ ‘통통하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이탈리아 화이트 와인 가운데 북부 피에몬테의 스칼리올라 샤도네이(Scagliola Chardonnay)라는 와인이 있다. 와인의 가격은 3만원대이지만 퍼포먼스는 10만원대 프랑스나 미국 샤르도네를 뺨친다. 이 와인은 무엇보다 우아한 향기가 특징이다. 사과, 멜론, 자몽향이 느껴지면서 바닐라 향의 긴 여운이 남는다. 단단하면서 우아하다. 프랑스의 뫼르쏘나 미국산 고가 샤르도네가 아닐까 여겨진다.
그래서 내가 이 와인을 가져가서 마신 뒤 여러 와인을 놓고 투표를 해보면 화이트 와인 1등은 물론 레드 와인을 누르고 ‘오늘의 최고 와인’에 선정되는 때도 많다.
젖산 발효를 왜 건너뛸까?
스칼리올라 샤도네이는 젖산발효를 하지 않는 게 특징이다. 보통 와인 발효 과정은 알코올 발효와 젖산 발효 두 가지로 나뉜다. 알코올 발효로 사과산(말산이라고도 함)이 생긴다. 사과산은 말 그대로 날카롭고 짙은 향이 난다. 젖산 발효는 유산균에 의해서 사과산을 젖산(요구르트와 비슷한 신맛을 낸다)으로 바꾸는 과정이다. 젖산 발효를 하면 와인이 좀 더 부드러워진다. 레드 와인은 강한 산도를 눌러주기 위해서 젖산 발효를 꼭 거친다. 이 과정을 거치면 와인에서 요구르트, 버터와 같은 복합미가 난다.
하지만 화이트 와인은 사과산의 발랄함을 강조하기 위해 와이너리에 따라 이 젖산발효를 건너뛴다. 먼저, 품종마다 다르다. 리슬링과 쇼비뇽 블랑은 젖산 발효를 하지 않고 상큼함으로 승부한다. 반면 샤르도네와 비오니에(프랑스 남부인 론의 대표적 화이트 품종)는 젖산발효를 거쳐서 좀 더 부드럽게 만든다.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의 뫼르쏘가 대표적인 젖산 발효를 거친 화이트다. 화이트 와인 가운데 가장 고가인 몽라셰 역시 젖산 발효를 한다. 하지만 이런 프랑스 와인을 1976년 ‘파리의 심판’(미국 독립 100주년을 맞아 프랑스와인과 미국 와인을 놓고 한 블라인드 테스트. 여기서 미국 와인이 예상을 깨고 레드와 화이트 부문에서 각각 우승했다)에서 따돌리고 1위를 한 미국의 샤토 몬텔레나는 젖산 발효를 하지 않는다.
스칼리올라 샤르도네도 사과산이 주는 발랄함으로 승부를 하기 위해 젖산 발효를 하지 않는다. 대신 오크숙성을 1년간 한다. 이후 병에서 6개월 숙성한 뒤에 출고한다. 기분좋은 바닐라향은 이 오크숙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스칼리올라의 고급스러운 맛의 근거가 하나 더 있다. 14~14.5도의 높은 알코올 도수다(내가 최근 마신 스칼리올라는 14.5도였는데 비비노 등의 자료를 보면 14도로 돼 있다.). 14.5도는 보통 레드 와인의 알코올 도수다. 그런데 화이트 와인을 이렇게 강한 도수로 만든 이유는 뭘까?
궁금증은 의외의 와인에서 풀렸다. 미국 브루어 클리프턴(Brewer Clifton)의 다이아톰(Diatom) 샤르도네를 마시고 나서였다. 이 와인의 도수 역시 14.5도였으며 젖산 발효를 하지 않았다. 오크 숙성도 하지 않는다.
다이아톰 샤르도네는 높은 알코올 덕분인지 정말 쨍쨍했다. 산도도 알코올도 심지어 타닌도 느껴졌다. 침용때 포도나뭇가지까지 넣는 것 같았다. 강한 레몬과 라임맛. 은은한 시트러스와 흰꽃향이 났다. 이 정도의 단단함이라면 참치나 방어같이 기름기 많은 붉은살 생선의 지방 부위는 물론 닭이나 돼지고기와도 어울릴 것 같았다. 와이너리가 위치한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 바바라의 거친 태평양을 떠올리게 했다. 바다를 끼고 있는 브루어 클리프턴에서 생산하는 와인에서는 모두 미네랄과 소금기를 느낄 수 있다.
높은 도수, 떠오르는 이미지마저 바꿔
다이아톰 수입사인 동원와인플러스는 홈페이지에서 이 와인에 대해 “샤르도네를 가장 순수하고 변질되지 않은 상태로 담아내려고 한 와인”이라고 말했다. 샤르도네이지만 리슬링 트로켄, 5도 미만으로 차갑게 냉장해서 마시는 비오니에·쇼비뇽 블랑의 날카로움이 느껴졌다.
사도네이는 포도 품종의 특성이 과실 상태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아 와이너리 철학을 가장 잘 입힐 수 있는 품종으로 꼽힌다. 전통적으로 샤도네이는 복합적인 아로마와 맛이 강조됐다. 새 프렌치 오크통에 넣고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바닥을 저어주는 바토나쥬를 해온 것도 그런 이유였다. 하지만 지금은 바토나쥬를 하지 않는 것이 유행이다. 지나친 복합미보다는 우아함을 강조하려는 의도다. 고급 와인의 경우에는 발효된 와인 원액의 오크 숙성도 절반쯤만 한다. 오크통에서 오는 과일향 등 2차향을 적절하게 조절하려는 것이다. 대신 14.5도라는 높은 알코올 도수로 근육을 입힌 것이 스칼리올라와 다이아톰이다.
샤도네이는 대게 우아한 여성에 비유돼 왔다. 긴 레이스의 치마를 입고 양산을 든 귀부인의 모습이었다. 쇼비뇽 블랑이 젊고 발랄한 젊은 여성에 비유되는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이는 샤도네이가 가진 우아한 아로마 덕분이었다. 하지만 스칼리올라와 다이아톰은 바지 정장을 입은 도시의 전문직 여성을 떠올리게 한다. 심지어 대학을 갓 졸업한 마른 체격의 풋풋한 남성이 떠오른다. 세련되고 모던하다. 14.5도 화이트의 마력이다.
권은중 전문기자는 <한겨레> <문화일보> 기자로 20여 년 일하다 50세에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의 ‘외국인을 위한 이탈리아 요리학교(ICIF)’에 유학을 다녀왔다. 귀국 후 <경향신문>, <연합뉴스> 등에 음식과 와인 칼럼을 써왔고, 관련 강연을 해왔다. 『와인은 참치 마요』, 『파스타에서 이탈리아를 맛보다』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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