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저장 ‘디지털 황금’ 주장…기축코인 골라 떠받치기
실효성 글쎄…업계 “전환점” 환호 vs “국민에 도움안돼”
새 지지층에 선물보따리…자기자산 증식에 이해상충 논란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상화폐의 전략비축을 지시함에 따라 줄곧 제도권밖에 머물러 온 이들 자산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주목된다.
미국 정부는 가상화폐를 ‘디지털 황금’이라며 새로운 가치저장 수단으로서 의미를 공식적으로 강조하지만 이면에 다른 의도가 있을 수 있다는 관측이 일반적이다.
일단 트럼프 행정부가 표방하는 전략비축 가상화폐의 역할은 당국자 발표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데이비드 색스 백악관 인공지능(AI)·가상화폐 차르는 6일(현지시간)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비축한 가상화폐를 절대 팔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는 “가치를 저장하는 역할로서 보관될 것”이라며 “비축고는 ‘디지털 황금’으로도 불리는 암호화폐를 위한 디지털 ‘포트 녹스'(Fort Knox·미국 금괴보관소의 속칭)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포트 녹스는 기축통화로서 미국 달러화의 가치를 담보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로 막대한 양의 금괴가 보관된 것으로 알려졌다.
색스가 경제 안보와 직결된 그런 시설을 언급한 것은 가상화폐가 그만큼 엄중하게 관리될 것이란 의미로 읽힌다.
아울러 극심한 변동성으로 악명 높은 암호화폐 시장을 떠받치는 일종의 ‘안전판’으로서 비축고를 강조하는 것으로 볼 여지도 있다.
전략적 비축 대상이 된 비트코인, 이더리움(ETH), XRP(리플), SOL(솔라나), ADA(카르다노) 등 가상화폐를 가상자산계의 기축통화로 삼으려는 의지가 엿보이기도 한다.
이는 가상화폐의 신분상승 시도로 주목된다.
미국 정부는 가상화폐에 그 태동기부터 냉소적이고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왔다.
사이버 범죄, 탈세, 제재 회피, 테러를 비롯한 범죄를 위한 재정지원 등의 수단으로 간주해온 게 사실이다.
작년 초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의 거래소 상장과 거래를 승인했을 당시만 해도 비트코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가상화폐 시장의 상전벽해를 진단하기에 아직 이르다는 평가도 많다.
실제로 그런 변화가 일어나기에는 미국 정부의 암호화폐 전략비축 규모가 부족할 것이란 지적이 가능하다.
미국 정부는 코인을 직접 매수하지 않고, 형사 또는 민사 몰수 절차의 일환으로 압수한 암호화폐만을 저장하기로 했다.
색스는 “납세자에게는 단 10센트의 비용도 발생하지 않는다”고 강조했고, 미국 정부가 약 20만개의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비트코인 1개 가격이 1억2천800만원 내외에 형성돼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략 25조원이 넘는 가치의 비트코인을 지닌 셈이지만, 세계 금융시장에서 포트 녹스가 갖는 의미와 비견하기에는 빈약하기 그지없는 데다 직접 매입을 하지 않는다면 비축분이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 때문인 듯 투자자들도 실망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기대와 달리 정부 차원에서 예산을 투입해 가상화폐를 구매하지는 않겠다는 발표에 비트코인 가격은 이날 한때 5%나 급락해 개당 8만5천달러(약 1억2천300만원) 아래로 떨어졌다가 현재는 8만8천달러대로 하락분을 일부 회복한 상황이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비트코인 위주 헤지펀드인 캐프리올 인베스트먼트의 창업자 찰스 에드워드는 “이건 이번 주 기대할 수 있었던 것 중 가장 실망스러운 결과”라면서 “적극적으로 매수하지 않는다는 건 이미 정부 내에 존재하는 비트코인 보유고에 예쁜 제목을 붙인 것에 불과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반면, 네브래스카 소재 디지털월렛 공급업체 엑소더스 무브먼트의 J.P. 리처드슨 최고경영자(CEO)는 “이건 업계에 있어 전환점이 될 것”이라면서 “2022년을 돌아보면 조 바이든 전 행정부는 우리 산업에 적극적으로 적대적이었다. 이제 백악관에는 암호화폐 정책을 이야기하며, 이는 현 행정부가 암호화폐를 진지하게 본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가상화폐 띄우기에 나서는 배경에는 새로운 지지기반을 굳히려는 정치적 노림수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가상자산에 대한 규제를 두고 바이든 행정부와 대립하던 거액 자산가들을 자신의 진영으로 끌어들여 새로운 정치자금줄의 물꼬를 트려는 선심성 정책이라는 것이다.
미국 민주당은 2022년 11월 미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FTX가 붕괴한 사태를 계기로 암호화폐 산업에 비판적인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집권 당시엔 가상화폐에 회의적이었으나 작년 대선 선거운동에서 입장을 바꿔 업계의 전폭적인 지원을 끌어낸 바 있다.
그는 작년 7월 내슈빌 유세에서 비트코인을 전략적으로 비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올해 초 취임 직후에는 암호화폐 전략 비축의 타당성을 조사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고 이달 7일에는 백악관에서 첫 ‘가상화폐 서밋’을 개최한다.
블룸버그 통신은 암호화폐 전략비축과 관련한 이번 발표에 대해 “약 20여명의 암호화폐 산업 경영진의 백악관 방문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그들에게 선물을 줬다”고 풀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비축코인을 정치적 제스처로 보는 이들 사이에서는 실효성 논란이 당연히 제기된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가 구축할 암호화폐 전략비축고가 어떤 식으로 작동할지, 미국 국민에게 실제로 혜택이 될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추후 입장을 더 적극적으로 바꿔 정부가 암호화폐를 직접 매입하기 시작한다면 일부 ‘큰 손’들만 이익을 볼 것이란 관측까지 나온다.
현지언론에서는 트럼프 일가가 가상화폐 업계에 발을 담그고 있는 만큼 자신의 자산 증식을 위해 전략비축 코인을 추진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아들들은 암호화폐 플랫폼 업체에 적을 두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이 설립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 운영업체는 자산의 상당 부분을 가상화폐에 투자해 놓고 있다.
올해 초에는 트럼프 대통령 부부가 각자의 이름을 딴 ‘밈'(meme) 코인 $TRUMP와 $MELANIA를 출시하기도 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밈 코인으로부터 최소 3억5천만 달러(약 5천억원)를 벌어들였다며 이 같은 횡재 때문에 가상화폐 정책에 대한 이해상충 논란이 더 뜨거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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