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 박재형 특파원] 미국 달러(USD)는 오랫동안 세계 기축통화 및 국제 거래의 기본 결제 수단으로 자리 잡아 왔다. 그러나 최근 지정학적 변화와 경제적 불확실성, 그리고 달러의 ‘무기화’(Weaponization)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여러 국가들이 달러 의존도를 줄이려는 ‘탈달러(De-dollarization)’ 움직임을 가속화 중이라고 14일(현지시각) 코인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
달러 패권 약화 조짐
미국 경제는 전 세계 GDP의 약 25%를 차지하지만, 글로벌 외환보유고의 60% 이상이 달러로 구성될 만큼 압도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경제 제재와 보호무역 기조가 지속되면서, 여러 국가들이 달러 중심 금융 시스템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확대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는 서방 제재로 인해 국제 금융 결제망(SWIFT)에서 차단된 이후, 암호화폐를 이용한 국경 간 결제를 모색하고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과거 암호화폐를 불법으로 규정했지만, 지난해부터 규제를 완화하면서 기업들이 해외 결제 수단으로 비트코인(BTC)과 기타 디지털 자산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또한, 비트코인 채굴을 합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등 암호화폐 친화적인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했다.
비트코인이 ‘탈달러’ 수단?
비트코인과 같은 디지털 자산은 오래전부터 달러 의존도를 줄이는 대체 수단으로 주목받아 왔다. ‘탈달러’라는 개념은 △석유·원자재 거래(페트로달러 시스템) △외환보유고 △양자 무역 협정 △달러 표시 자산 투자 등에서 달러의 역할을 축소하는 움직임을 의미한다.
2024년 모건스탠리 디지털 자산 시장 책임자인 앤드류 필(Andrew Peel)은 보고서를 통해 “디지털 화폐의 부상은 달러 패권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새로운 형태로 강화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암호화폐가 금융 시스템 내에서 더 큰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지만, 현재로서는 여전히 조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의미다.
현재 스테이블코인(Stablecoin)과 같은 디지털 자산의 활용이 증가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비트코인이 달러를 대체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비트코인, 기축통화 가능할까?
비트코인은 점차 전략적 준비자산(Strategic Reserve Asset)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여전히 기축통화로 자리 잡기에는 한계가 있다. 엘살바도르는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하고, 국가 외환보유액의 15~20%를 BTC로 보유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반면, 미국 정부는 일부 암호화폐 관련 정책을 검토하고 있지만, 달러의 지위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로 본격적인 도입에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브랜든 민츠 비트코인 디포(Bitcoin Depot) CEO는 “비트코인이 달러의 대안이 되려면, 광범위한 채택, 명확한 규제 프레임워크, 더 확장 가능한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현재로서는 비트코인이 달러를 대체하기보다는 ‘가치 저장 수단(Store of Value)’ 혹은 ‘헤징 자산’으로 역할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인플레이션과 지정학적 긴장이 지속될 경우, 암호화폐에 대한 관심이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민츠는 “기관 투자와 국경 간 거래에서 비트코인의 활용이 증가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달러 패권에 도전할 수 있을지는 앞으로의 글로벌 금융 변화에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