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오수환 기자] 미국이 비트코인(BTC)을 전략적 비축자산으로 검토하는 움직임이 가시화되면서 국내에서도 디지털자산(가상자산)의 외환보유고 편입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비트코인의 높은 변동성을 이유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반면, 전문가들은 제도화와 시장 안정화가 이루어지면 미래에 가능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정치권, 비트코인 외환보유고 편입 주장
18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은행은 지난 1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의 서면 질의에 대해 “비트코인의 외환보유고 편입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한은이 비트코인 비축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정치권에서 비트코인을 외환보유고에 포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민주당 집권플랜본부는 지난 6일 국회에서 ‘트럼프 2.0 크립토 금융시대 대한민국의 대응 전략’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김종승 엑스크립톤 대표는 “미국이 비트코인을 외환보유고의 일부로 공식 인정할 경우 국제 금융시장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며 “한은과 기획재정부도 외환보유고 포트폴리오에 비트코인을 포함할 가능성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높은 변동성, 외환보유고 편입의 최대 걸림돌
비트코인을 외환보유고에 포함하는 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가장 큰 걸림돌은 높은 가격 변동성이다. 외환보유고는 국가 경제의 안정성과 대외 지급 능력을 뒷받침하는 핵심 자산으로 안정성과 유동성이 필수적이다.
최승호 쟁글 연구원은 “최근 몇 년간 비트코인은 2021년에 6만9000달러에서 2022년 1만6000달러까지 70% 이상 폭락하는 등 수십 퍼센트의 가격 변동을 반복해 왔다“며 “달러나 유로 등 주요 통화와 비교하면 변동성이 지나치게 높다“고 말했다. 실제로 비트코인은 단기간 내 가격이 급등락할 가능성이 크고 시장 불안이 발생할 경우 현금화 비용이 급등할 위험이 있다.
국제 기준과 전통적 외환보유 자산 요건 미충족
가격 변동성과 더불어 국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외환보유 자산 요건에 따르면 외환보유고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높은 유동성과 신뢰성이 요구된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아직 이러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
한은 관계자는 “외환보유고는 필요할 때 즉시 현금화할 수 있어야 하지만, 비트코인은 시장 불안이 발생하면 현금화 비용이 급등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입장은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정책과도 일맥상통한다. 유럽중앙은행(ECB), 스위스 중앙은행(SNB), 일본 정부 등도 비트코인을 외환보유고로 편입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외환보유 자산은 유동적이고 안정적이어야 한다“며 “비트코인은 변동성이 크고 자금세탁 등 불법 활동과 연관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국부펀드 통한 간접투자 가능성도 낮아
한은이 직접 비트코인을 보유하지 않더라도 국부펀드인 한국투자공사(KIC)를 통해 간접적으로 투자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실제로 한국투자공사는 비트코인 현물 ETF 운용사인 그레이스케일의 모회사 스트래티지 주식 약 3만 주를 매수하며 간접적으로 디지털자산에 연관 투자를 하고 있다.
그러나 최 연구원은 “한국투자공사는 국가 자산을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기관으로 투자 대상에 대한 법적·정책적 가이드라인과 리스크 관리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며 “비트코인의 높은 변동성과 규제 불확실성은 공사의 투자 기준에 부합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제도화와 함께 한은 입장 변화 가능성도
전문가들은 향후 시장 환경과 정책 변화에 따라 한국은행의 입장이 바뀔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최 연구원은 “비트코인의 가격 변동성이 안정화되고 주요 국가나 국제기구가 이를 외환보유고 자산으로 인정하면 한은도 입장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며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디지털자산의 수용도가 높아지면 비트코인 보유를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전문가들은 글로벌 환경 변화와 함께 국내 제도적 기반 마련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동민 인디이콘마켓리서치 대표는 “한은의 외환보유액 운용은 현금성 자산, 직접투자 자산, 위탁투자 자산으로 구성된다”며 “비트코인이 투자자산으로 인정받으려면 국내에서 그 성격이 명확히 규정되고, 투자 절차와 관리 기관이 확립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디지털자산 업계 관계자는 “중앙은행들이 새로운 기술과 자산에 보수적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그러나 지난 10년간 비트코인이 보여준 성장과 제도화 속도를 감안하면, 앞으로 5~10년 내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태도가 달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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