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김진배 기자] 은행들이 사업 영역에 블록체인을 본격적으로 적용하는 모양새다. 지난해까지 암호화폐 이슈로 블록체인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사업영역도 다양하다. 업무효율화부터 해외 결제까지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다만 암호화폐에 대해서는 아직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정부가 ICO와 암호화폐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다 이렇다 할 가이드라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다. 블록체인 적용도 당연히 프라이빗 블록체인으로 진행된다.
◆ 신한·하나·우리銀 “자기주권신원으로 업무 효율화 이뤄낼 것”
대출을 위해 복잡한 서류를 떼느라 진땀을 빼지 않아도 되며 은행에 방문할 필요도 없는 길이 열리게 된다.
신한은행은 다음달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신 개념 자기주권신원(Self-Sovereign Identity, SSI) 서비스를 지원할 예정이다. 자기주권신원 서비스란 중앙화된 방식의 인증방식에서 벗어나 본인의 정보를 직접 관리하는 기술을 말한다. 본인의 개인정보를 개인 지갑(일반적으로 스마트폰)에 저장하고 암호화 한 후 블록체인을 통해 필요한 정보만을 관련 기관에 전달하는 방식이다.
하나은행과 우리은행도 자기주권신원 방식의 신분증 서비스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방식을 이용하면 필요한 서류를 개인이 관리하고 전송하기 때문에 서류를 발급받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제출을 위해 은행에 방문할 필요도 없게 된다. 은행 입장에서도 원하는 정보만 요청하고 블록체인을 통해 받아보기 때문에 고객정보의 빠른 수집이 가능하다.
업무 처리 속도도 향상될 전망이다. 직원이 직접 서류를 확인해야 하는 과정이 사라지고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해 자동 계약이 체결돼 시간과 비용 모두 줄어들게 된다. 서류가 가득한 은행 업무에 ‘서류 없는 업무환경’이 구현되는 것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다음달 예정인 서비스를 통해 업무처리 비용 및 시간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며 “고객은 영업점을 방문하지 않아도 대출이 가능해 편리함이 대폭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 KEB하나銀 “글로벌 지불 플랫폼 개발하겠다”
하나은행은 블록체인을 통해 GLN(Global Loyalty Network) 사업을 본격화했다. GLN은 하나금융그룹이 주도하는 글로벌 지불 플랫폼이다. 하나금융그룹은 GLN을 통해 기존 ‘하나멤버스’를 통해 제공하던 서비스를 글로벌 수준으로 제공할 계획이다. 현재 하나멤버스를 통하면 하나금융그룹의 포인트를 현금으로 전환할 수 있으며 가맹점에서 결제도 가능하다.
글로벌 결제가 가능하게 된 배경에는 블록체인 기술이 있다. 컨소시엄에 참여하는 업체들의 네트워크를 블록체인으로 관리하고, 블록체인 안에서 디지털 자산을 서로 교환하게 함으로써 글로벌 지불체계가 가능하게 됐다. 하나은행에서 제공하는 ‘하나머니’를 통해 해외 결제, 송금, 인출은 물론 현지 쿠폰 발급까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는 이유다.
최근 하나금융그룹은 대만에서 하나머니로 결제할 수 있는 시범 서비스를 오픈했다. 글로벌로 서비스를 확장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하나멤버스 대만결제 시범서비스 런칭 행사에서 “글로벌과 디지털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며 “하나멤버스 대만결제 서비스는 하나금융그룹이 수년간 준비해 온 글로벌 로열티 네트워크(GLN) 사업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 아직은 조용… 그러나 “하고 있다”
블록체인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은행이 있는 반면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곳도 있다. 기업은행이 대표적이다. 올 초까지 기업은행은 블록체인과 관련해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그저 블록체인에 관한 스터디가 진행 중이며 관련 부서에서 논의 중이라고만 밝혔다. 이외 특별한 소식이 없던 기업은행은 지난 2일 블록체인 스타트업 테라와 업무협약 소식을 발표했다. 블록체인 기반 사업모델을 개발하고 실용화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의도다.
테라와 협업 체결로 블록체인에 대한 관심은 확인됐지만 아직 구체적인 수준으로 진행된 것은 없다. 사업 모델도 적용 범위도 아직 미정이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기업 측면에서 블록체인 기업과 협업해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지를 찾아가는 단계”라고 밝혔다.
여전히 블록체인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도 취했다. 그는 “다른 은행들이 블록체인을 적용하겠다고 나서는 분야들을 봤을 때 중앙 방식이 더 편해 보이기도 한다”면서 “블록체인을 굳이 적용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다만 블록체인이 적용될 가능성은 열어놨다. 블록체인이 적용될 부분은 기존 은행이 시도하지 않던 영역일 가능성이 높다. 관계자는 “다른 은행을 따라가기보다 새로운 영역에서 블록체인을 적용할 수 있는지를 찾아볼 것”이라며 “테라와 협력해 접목이 가능한 부분을 찾아볼 것”이라고 말했다.
◆ 암호화폐와 관련해서는 “어렵다”
블록체인에 관한 논의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암호화폐에 대한 금융권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정부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 이상 금융권의 시선은 변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암호화폐와 관련해서는 전혀 고려사항이 아니다”고 단언했다. 다른 은행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정부가 변화를 보이지 않는데 은행이 나서서 움직일 수 없다는 의견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암호화폐를 규제하고 있는데 은행이 먼저 나서서 행동을 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면서 “어떤 사업도 생각하고 있지 않지만 그래도 움직임이 생긴다면 정부의 구체적 방안이 나오고 난 뒤에나 가능할 것”이라 말했다.
부산은행은 부산시 블록체인 특구가 선정되면 디지털금융 사업 강화를 위해 암호화폐 거래소 설립을 계획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화폐 거래소와 함께 암호화폐 거래소를 운영해 특구를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실제로 특구를 준비하면서는 암호화폐 거래소는 제외됐다. ICO가 특구에서 제외되면서 사업의 실효성 문제가 제기됐고 은행도 정부의 완강한 태도에 사업을 축소한 것이다. 관계자는 “특구 논의 과정에서 ICO가 빠지면서 암호화폐 거래소 필요성에 대한 의문이 생겨난 것으로 안다”면서 “특구라 해도 은행이 정부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사업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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