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오수환 기자, 지승환 인턴기자] 올해부터 법인의 시장 참여가 제한적으로 허용됐지만 시장 진입 장벽은 여전히 높다. 금융당국인 은행을 통해 간접적으로 거래소 운영에 개입하면서 신규 사업자들이 시장에 진입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3일 업계에 따르면 법인의 디지털자산 시장 참여를 위한 로드맵과 관련된 가이드라인 발표를 앞두고 법인들의 시장 진입 의지가 높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블록체인 기술 기업 관계자는 “최근 법인 계좌 개설 가능성이 열리면서 상당수의 기업들이 관심을 보이며 기술 문의를 해오고 있다”며 “이전에 법인들이 블록체인 진입에 대해 조심스럽게 고민만 해오던 단계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라고 말했다.
법조계 관계자도 “가이드라인 발표 전부터 다수의 법인들이 사전 준비 사항에 대한 문의를 해오고 있다”며 “과거와 달리 은행권의 관심도 함께 높아진 상황”이라고 했다. 하반기부터 법인 대상 시장 참여가 단계적으로 허용될 예정인 만큼 은행권 내부에서도 관련 논의가 점차 활기를 띠는 분위기다.
실명계좌, ‘자율’ 아닌 책임 전가
은행업계가 디지털자산 시장에 관심을 보이는 거래소 고객 예치금이 막대한 유동성 자원이기 때문이다. 거래소 고객 예치금은 언제든 입출금이 가능한 요구불예금으로 분류돼 자금 조달 비용이 낮다. 또 은행 수익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현재 국내 주요 거래소들의 고객 예치금은 1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거래소와 제휴를 맺은 은행은 해당 거래소를 이용하는 고객의 실명을 확인해주는 역할을 맡는다. 은행은 그 대가로 △고객 예치금 유치 △펌뱅킹 수수료 등의 수익을 얻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높은 시장성과 수익 가능성에도 은행들은 그간 디지털자산 거래소에 실명계좌를 발급하는 데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자금세탁 의혹 △해킹 사고 △내부 통제 미비 등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 그 법적·도덕적 책임이 고스란히 은행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에 따르면 가상자산사업자는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신고 수리를 받기 위해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이 필요하다. 원화·디지털자산간 거래를 위해선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도 확보해야 한다. 문제는 이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 발급 여부가 은행의 자율적 판단에 맡겨져 있다는 점이다.
실명계좌 발급 과정을 직접 경험한 업계 관계자는 “금융기관과 거래소를 연결하는 펌뱅킹은 기술적으로 복잡한 것이 아니고, 원래 은행이 하던 일”이라며 “단지 대상이 디지털자산 거래소라는 이유만으로 매우 민감한 사안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금융당국은 디지털자산 거래소를 지나치게 위험한 존재로 인식했고, 실명계좌 제공을 사실상 차단하려는 분위기였다”고 언급했다. 은행에 ‘거래소의 자금세탁 위험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지라는 식으로 리스크를 넘겼다는 것이다.
결국 과도한 책임 부담 탓에 많은 당시 많은 거래소들이 은행과 실명계좌 계약을 맺지 못했다. 현재 원화 마켓을 운영하며 실명계좌를 보유한 곳은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고팍스 등 다섯 곳뿐이다. 실명계좌를 확보한 사업자와 확보하지 못한 사업자 간의 격차는 더 벌어지며 시장은 고착화되고 있다.
허울 뿐인 자율⋯FIU ‘그림자 규제’ 논란
금융당국은 이에 대해 실명계좌는 은행의 자율 계약 사항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그림자 규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내 전문가는 “FIU는 자금세탁방지(AML)에 한정된 권한을 갖고 있음에도, 시행령과 감독규정 변경을 통해 사실상 영업행위까지 규제하는 수준으로 권한을 넓히고 있다”며 “이는 특금법에서 명시한 위임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고객자산 분리 보관이나 거래 중단 요구 등은 자금세탁과 직접 관련이 없는 사안임에도 감독규정으로 강제되고 있다”며 “이는 법령상 신고 불수리 사유와도 무관한 내용인데, 업계에 과도한 자료 제출과 불필요한 개입이 이어지며 제도의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까지 훼손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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