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명정선 기자] 2025년 4월 TRON 창립자 저스틴 선이 다시 한 번 암호화폐 업계의 중심 인물로 떠올랐다. 코인데스크 보도에 따르면, 저스틴 선은 스테이블코인 TrueUSD(TUSD)의 준비금에 약 4억 5,600만 달러에 달하는 격차가 발생한 위기 상황에서 긴급 자금을 투입해 사태를 진정시켰다고 한다. TUSD가 미국 달러와의 1:1 연동성을 잃고 붕괴(burst)할 위험에 처했지만, 선의 개입으로 최악의 상황을 피한 것이다.
이 사건을 두고 저스틴 선은 자신을 “블록체인 울트라맨”에, 위기를 “금융 고질라”에 비유했다. 그는 홍콩 매체 싱타오 데일리(Sing Tao Daily)와의 인터뷰에서 특유의 과장된 화법으로 이렇게 말했다.
“고질라가 도시를 파괴하려 했고,
나는 울트라맨으로서 한 손으로 그를 물리쳤다.
나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온 존재다.”
하지만 저스틴 선의 등장은 단순한 영웅놀이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TUSD 위기와 함께 드러난 홍콩 내 금융 사기 사건 ‘FDT 스캔들’에 주목하며, 규제 허점과 감독 부실을 강하게 비판했다. 홍콩의 금융 규제기관과 사법당국이 신탁회사 및 면허 거래기관에 대한 감시 체계를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촉구한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이 자산은 공공의 신뢰를 기반으로 한 자금입니다.
국제 금융 허브인 홍콩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저는 유동성 지원을 결정했습니다.
사기의 규모에 경악했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범죄자는 반드시 법에 따라 엄정하게 처벌받아야 합니다.”
암호화폐 세계는 항상 거대한 변동성과 예측 불가능한 리스크로 가득하다. 시장의 파도가 몰아칠 때마다 대혼란은 반복되지만, 그 와중에도 불을 밝히는 존재들이 있다. 저스틴 선은 자신을 그런 ‘나이트워치맨’ 중 하나로 정의한다. 그는 감정과 야망이 뒤섞인 혼란의 시기마다 행동으로 자신의 입장을 증명하려 한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만의 방식으로 말이다.
#이더리움 : 저스틴 선이 두 번 붙잡은 신념
2021년 5월 19일 암호화폐 시장이 패닉에 빠졌을 때도 그랬다. 비트코인(BTC)은 31,000달러 아래로, 이더리움(ETH)은 2,000달러 선 아래로 무너지며 시가총액 수천억 달러가 하루 만에 증발했다. 이른바 ‘5·19 대폭락’은 시장을 공포로 단숨에 장악했고, TRON 창립자 저스틴 선(Justin Sun) 역시 청산 위기 한가운데 놓였다.
그는 유동성 풀(Liquity Protocol)에 담보로 예치해 두었던 606,000 ETH는 청산까지 단 2분을 남기고 있었다. 그는 3억 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투입해 부랴부랴 대출을 상환하고, 파산 직전의 낭떠러지에서 탈출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후 저점에서 ETH 5만 4천 개, BTC 4,145개를 추가 매수했다. 자산을 지키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시장을 사들인 것이다.
그는 웨이보에 이렇게 적었다.
“내 자금은 안전하다.
하지만 총알이 두피를 스치던 순간, 식은땀이 났다.
바늘이 그렇게 날카로울 줄 몰랐다.”
이 발언은 단순한 위기 극복의 기록이 아니라, 신념의 표현이었다. 그는 이 사건을 두고 “암호화폐 세계를 구했다”고 자평했으며, 생존자의 자부심과 시장에 대한 사명감을 동시에 드러냈다. 단순히 자산을 방어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는 ‘탈중앙의 이념’을 현실 속에서 지켜냈다는 메시지였다.
시간이 흐른 2024년, 이더리움은 다시 약세장을 맞았고, 저스틴 선은 또다시 전면에 등장했다. 그가 보유한 거대한 ETH 포지션은 커뮤니티 내에서 ‘청산설’ ‘공매도 루머’로 확대 재생산됐다. 시장은 불안에 떨었지만, 그는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응수했다. 이번에는 시장 참여자가 아닌 생태계 설계자, 즉 ‘이더리움 재단의 운영자’로서의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저스틴 선은 공개적으로 이더리움 재단 운영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다음과 같은 ‘시장 구제 패키지’를 제안했다:
- ETH 매도 중단 및 장기 보유 전략 전환
- 레이어 2 세금 최적화를 통한 매수 및 소각 정책 도입
- 이더리움 재단의 운영 슬림화 및 의사결정 구조 단순화
- 노드 보상 구조 조정을 통한 디플레이션 유도
- 레이어 1 기반 기술 R&D 투자 확대
이는 단순한 정책 제안이라기보다, 이더리움이 ‘가치 저장 수단’으로 거듭나기 위한 전환점을 설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의 목표는 단기적 가격 방어가 아닌 이더리움 생태계의 체질 개선이었다. 물론 이런 제안은 커뮤니티 내 논쟁을 피할 수 없었다. ‘이방인’의 개입이기 때문이다.
일부는 저스틴 선의 제안을 ‘외부인의 월권’이라 비판했다. 그가 TRON을 기반으로 한 독자적 생태계를 운영하고 있는 만큼, 이더리움 생태계 내에서 주도권을 얻으려는 시도는 일종의 ‘권력 확장’으로 읽혔다. 반면, 다른 이들은 그를 이더리움의 문제를 외부에서 가장 정확히 본 인물이라 평가하며, 구조 개편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드러내기도 했다.
#후오비 인수, ‘뜨거운 감자’에서 ‘황금 감자’로
그의 드라마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크립토 위기 한 가운데 저스틴 선은 꼭 등장하고야 만다. 후오비 위기때도 그랬다. “썬 형제는 후오비 인수 이후 사기당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커뮤니티에서는 그런 농담이 회자된다. 하지만 그 말 끝에는 어느새 놀라움과 존경이 묻어난다.
2022년 10월, 저스틴 선은 후오비(현 HTX)의 글로벌 어드바이저로 공식 합류했다. 당시 암호화폐 시장은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었다. 바로 그 시기, FTX의 붕괴가 시장의 신뢰를 송두리째 흔들었고, 중앙화 거래소(CEX)에 대한 의심은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후오비는 그 충격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규제 압력과 운영 난맥, 그리고 사용자 기반의 급격한 이탈로 인해 거래소의 존재감은 희미해져 갔다. 거래량 급감, 자산 유출, 평판 악화가 겹쳤고, 커뮤니티에서는 후오비를 두고 “죽어가는 거래소”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저스틴 선의 등장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업계는 이를 ‘뜨거운 감자를 손에 쥔 행위’로 평가절하했지만, 그는 후오비를 단순히 구조하지 않았다. 그는 회생과 동시에 후오비의 ‘전략적 재탄생’을 기획했다.
현재 후오비의 거래량과 사용자 활동은 꾸준히 회복되어 이전의 영광을 되찾고 있다. 그는 후오비를 TRON 기반의 글로벌 거래 허브로 바꾸는 데까지 나아갔다. 플랫폼의 기능은 TRON 생태계의 디파이, NFT, 스테이블코인, 스테이킹 서비스 등과 긴밀히 엮이며, ‘선형 생태계’의 주요 축으로 작동하게 되었다. 그는 후오비를 ‘금으로 도금한 간판’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오늘날 그것은 일정 부분 현실이 되었다.
물론 비판도 존재한다. 후오비의 부활이 ‘진정한 탈중앙화’의 가치에 부합하는가에 대한 의문, TRON과의 이해관계가 과도하게 얽혀 있다는 우려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오비를 통해 저스틴 선이 보여준 것은 분명하다. 그는 위기 속에서도 단순한 수비가 아니라, ‘공격적 재건’을 택하는 플레이어라는 점이다.
#커브 파이낸스의 위기, 저스틴 선이 쏟아부은 2,880만 달러의 의미
2023년, 디파이(DeFi) 생태계가 다시 한번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커브 파이낸스 이더리움 기반 유동성 프로토콜이 해킹을 당하면서 핵심 토큰인 CRV의 가격이 급락했고, 설립자인 마이클 에고로프(Michael Egorov)가 담보로 맡긴 CRV 기반 대출 포지션 총액 약 1억 달러가 청산 위기에 몰렸다. DeFi 전체에 피 냄새가 돌기 시작했다. 시장은 패닉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고, 연쇄 청산과 유동성 부족의 위험이 점점 현실화되고 있었다.
이때 다시금 무대에 등장한 인물이 저스틴 선이다. 그는 크립토 업계의 주요 플레이어인 두준(후오비 창업자), DCFGod, 앤드류 강(Andrew Kang)과 함께 구제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이들은 CRV 가격이 0.4달러선까지 하락한 시점에 총 7,200만 달러 상당의 CRV를 매수했다. 이 중 저스틴 선이 투입한 금액은 약 2,880만 달러. 이 조치는 단순한 투자가 아니라, 에고로프의 청산 위기를 막고 커브파이낸스의 시스템 안정성을 지켜내는 목적이었으며, JP모건 체이스 조차 “위기 확산을 막은 결정적 개입”이라며 공개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저스틴 선의 개입은 단지 시장의 불을 끄는 구조 작업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Curve 플랫폼에 트론 기반의 stUSDT 유동성 풀을 신규로 론칭했다. 이는 트론 생태계에 유동성을 공급하면서, 동시에 CRV 위기를 활용해 자신의 플랫폼 확장을 꾀한 전략적 수였다. 그 결과, 트론의 총 예치 자산(TVL)은 시장 약세 속에서도 역행 상승했다. 다시 말해, 그는 커브를 구하면서 동시에 트론을 키운 셈이다.
당시 커뮤니티는 이 행동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도움의 손길을 빌미로 시장 지배력을 확대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과,“누군가는 움직여야 했고, 그가 나섰기에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찬사가 엇갈렸다. 사실 저스틴 선은 매번 위기 속에서 등장하지만, 그 개입은 늘 자신의 이해관계와 맞닿아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그를 단순한 이상주의자나 투기꾼이 아닌, 정치적 구조자(political strategist)로 만드는 요인이다.
#신념인가 이미지인가… 그럼에도 남는 어떤 진심
이처럼 그의 행보에는 언제나 그림자가 따라붙는다. 누군가는 구조의 탈을 쓴 사업가라 비난하고, 또 어떤 이들은 그의 모든 지원에는 자기 생태계의 이득이 걸려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도 그의 구조는 늘 TRON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행동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장이 무너질 때 도망칠 때, 그는 위험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돈만 좇는 투자자라면 하지 않았을 선택, 이미지 관리만 하는 경영자라면 꺼렸을 결단을, 그는 반복해서 감행했다.
실제 그는 이더리움 보유분이 큰 손실을 보았을 때도 그는 패닉 셀링(panic selling)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신만의 자산 구조를 재설계하며, 월드 리버티 파이낸셜(WLFI)과 협업해 TRX를 글로벌 준비 자산으로 끌어올릴 계획을 멈추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위기는 물러나는 이유가 아니라, 다음 스텝을 위한 계기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빨리 돈을 벌기 위해 여기 온 것이 아닙니다.”
“미래에 도움이 될 무언가를 만들고 싶습니다.”
이 짧은 문장은 어린 시절의 꿈처럼 들릴 수도 있다. 혹은 과장된 자기 연출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그가 내린 결정의 출발점이자, 동력이다.
울트라맨이 도시를 지키기 위해 밤하늘을 날 듯, 저스틴 선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또 다른 위기를 감지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가 지키는 대상이 진정으로 공공을 향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자신의 제국을 위한 방패였는지는 여전히 질문으로 남는다. 하지만 그가 완벽한 인물은 아닐지언정, 행동을 멈추지 않는 구조자이자, 생존을 설계하는 전략가로서 디지털자산 업계의 밤을 밝혀온 ‘야경꾼’ 중 한 명임은 분명하다. 앞으로의 역사가 그의 흔적을 어떻게 기록할지는, 또 다른 위기 속에서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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