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박미선 기자] 미국의 ‘상호 관세 90일간 유예’로 투자자들의 고난이 ‘일시’ 멈췄다.
뉴욕 증시를 시작으로 아시아 증시까지 큰 폭으로 반등해 투자자들은 한숨 돌린 상황이지만, 전문가들은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는 해소되지 않았다고 진단하고 있다. 시장 불확실성은 여전히 존재하는 만큼 시장 변동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9일(현지 시간) CNBC에 따르면 다우 지수는 7.87% 급등해 2020년 3월 이후 가장 큰 폭의 상승률을 기록하며 장을 마감했다. S&P500 지수는 9.52% 뛰었는데 이는 2008년 이후 17년 만에 최대 상승률이다. 2차 세계대전 후 세 번째 높은 상승률이기도 하다.
나스닥 지수 역시 12.25% 폭등했다. 이 역시 2001년 1월 이후 최대 상승폭으로, 역대 두 번째 최고의 날을 기록했다.
이날 거래된 주식만 300억 주다. 이는 최근 18년간 가장 많은 주식 거래량으로, 월스트리트 역사상 손꼽히는 대규모 거래가 이뤄진 날이기도 하다.
관세 발표 이후 공포의 폭락장에 한숨 쉬던 투자자들은 이번 랠리로 간만에 안도의 미소를 짓게 됐다.
지난 2일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 관세 부과 계획을 발표하자 투자자들은 현금 확보를 위해 보유 자산을 모두 내다파는 과매도 상황을 연출했다.
주식뿐 아니라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던 채권까지 매도세에 합류해 미국 국채 금리가 급등하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스테이트 스트리트 글로벌 자산운용의 수석 투자 전략가 마이클 아론은 “새로운 미국 관세율은 지속 불가능했고, 오늘 트럼프 행정부는 결국 그것을 인정한 셈”이라며 “지난주 관세 발표 이후 투자자들이 처음으로 희망적인 소식을 들었다”고 말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발표 이후 증시가 출렁이자 “때때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약을 복용해야 할 때가 있다”며 단기적인 시장 변동성을 감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돌연 관세 유예를 선언했고, 이 메시지는 그가 주식 시장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긍정적 신호로 봐야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자산운용사인 SLC의 책임자인 덱 멀라키는 “나는 이것이 트럼프가 시장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가 너무 멀리 갔을 때 깨닫는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생각한다”며 “시장은 여전히 힘을 가지고 있고 겁먹을 수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 국채 과매도 등 경제 위험 신호 커지자 관세 유예…”불확실성 여전하고 시장 변동성 커”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상호 관세 유예를 선언한 것에 대해 국채 과매도에 예민하게 반응한 결과라고 해석한다.
실제 트럼프가 전날 상호 관세를 발효하자 10년 만기 미국의 국채 금리는 4.516%까지 급등했고, 30년 만기 국채 금리도 5%를 넘어섰다. 채권 가격과 금리는 반대로 움직여 매도세가 강하면 가격이 떨어지고 금리는 오른다. 주가가 하락하면 상대적 안전자산인 채권값이 오르는 게 일반적인데, 국채 가격 마저 떨어진 것이다.
이런 현상은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국채 등 안전자산의 기능이 흔들리고, 레버리지를 활용한 투자자에 대한 강제 청산이 일어나는 등 경제 시스템이 위기에 몰렸다는 걸 방증한다.
이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가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인플레이션이 우려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금리를 내려 시중에 돈을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경제를 위협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지자 트럼프는 정책을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향후 12개월 내 경기 침체 가능성을 65%로 전망했는데, 트럼프의 관세 유예 발표 후 이를 45%로 낮췄다. 경기 침체를 기본 전제로 뒀다가 이를 후순위로 돌려 침체 가능성을 낮춘 것이다.
다만 경제학자들은 경기 침체에 대한 불안함이 완전히 해소된 것이 아닌 만큼, 여전히 시장 변동성은 크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론은 “트럼프의 무역정책이 좀 더 명확해지기 전까지 앞으로 몇 주, 몇 달간은 시장 변동성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LPL 파이낸셜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로치 역시 “관세 90일 유예에도 불구하고 시장 변동성은 여전히 높게 유지될 수 있다”며 “올해 초반의 실물 지표는 무역 정책과 무관하게 경제가 둔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