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뤼너 벨트리너 상큼함에 단단함까지
오스트리아 도나우강 급경사에서 재배
중식·한식 스파이시한 요리와 잘 어울려
[블록미디어 권은중 전문기자] 와인 모임에 가져가서 절대 실패하지 않는 와인이 몇개 있다. 샴페인(로제 포함), 귀부 와인인 소테른은 열광적인 반응을 얻어낸다. 앞의 와인 정도는 아니지만 뉴질랜드 쇼비뇽 블랑, 스페인 템프라니요도 괜찮은 반응을 이끌어낸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하나를 더 덧붙인다.
오스트리아 그뤼너 벨트리너(Grüner Veltliner)다. 어려운 이름 탓인지 우리나라에는 아직 잘 안 알려졌다. 하지만 오스트리아의 가장 대표적인 화이트 와인이다. 레드를 포함해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많이 생산된다. 오스트리아 전체 와인 생산량의 30%가 넘는다.
그런데 이 품종은 리슬링보다 쨍하고 쇼비뇽 블랑보다 구조감이 쫀쫀하다. 그 말은 어떤 음식에도 매칭이 잘 된다는 뜻이다. 리슬링은 강한 산도와 단맛으로 쇼비뇽 블랑은 산도와 향으로 한식의 매콤함을 씻어낸다. 그래서 그뤼너 벨트리너는 내가 와인 모임에 자주 들고가는 와인의 하나다.
그뤼너 벨트리너는 품종적으로 사바냉(쇼비뇽 블랑의 아버지뻘이다)의 교접종이다.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 오스트리아에서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했고 20세기 초반에 이미 프랑스 쇼비뇽 블랑과 견줄 수 있을 만큼 맛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와인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순간은 2002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그뤼너 벨트리너와 프랑스 부르고뉴 샤르도네의 비교 시음대회였다. 이 대회에서 그뤼너 벨트르니는 부르고뉴 샤르도네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 프랑스 부르고뉴 샤르도네는 독일의 리슬링과 함께 세계 화이트 와인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화이트 와인의 대표주자다. 그런 프랑스 부르고뉴 샤르도네를 따돌렸다는 것은 이 와인이 가진 맛의 잠재력을 짐작하게 한다. 쇼비뇽 블랑에서 갈려져 나왔지만 상큼함은 물론 구조감이 뛰어난 와인이라는 뜻이다.
그뤼너 벨트리너의 포도밭은 대부분 도나우강을 따라 독일 라인강의 리슬링 포도밭처럼 가파른 언덕 위에 조성돼 있다. 생산지는 수도 비엔나 남쪽과 비엔나 북서부쪽에서 생산된다. 북서쪽으로 60~70km 가량 떨어져 있는 바카우(Wachau), 캄프탈(Kamptal), 크램스탈(Kremstal) 등이 고급 생산지다.
우아함에 구조감까지 갖춰 매력적
고급 생산지는 주로 도나우강을 낀 경사면이나 강 주변 지류를 낀 구릉지대다. 독일 라인강 주변의 포도밭과 풍광이 비슷하다. 미네랄감이 느껴지며 당도와 산도가 뛰어나다. 특히 그뤼너 벨트리너는 감귤류의 향에 약간의 알싸한 백후추 맛이 난다. 이런 복합적인 레이어는 튀지 않고 고급스러운 우아함으로 느껴진다.
브륀들마이어(Bründlmayer)는 도나우강의 지류인 캄프강 주변의 구릉 지대에 있는 와이너리다. 와이너리가 있는 지역 이름인 캄프탈은 감프강에서 따온 것이다. 100여년 전에 문을 연 이 와이너리는 자갈이 많은 토양에 계단식으로 조성돼 있다. 자갈은 특이하게 화강암이다. 그래서 맑고 단단하다. 차갑게 마시면 리슬링인지 샤르도네인지 알기 어려울 정도로 독특한 색깔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상당히 우아하다. 이 때문에 국내외에 많은 와인 평가에서 수상을 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브륀들마이어를 ‘오스트리아 와인의 등대’라는 호평을 듣기도 했다. 가격은 약간 있다.
캄프탈에서 더 서쪽의 바하우 지역도 그뤼너 벨트러니의 주 생산지다. 이곳의 루디 피흘러(Rudi Pichler)가 생산하는 그뤼너 벨트리너도 맛이 괜찮다. 루디 피흘러는 1731년에 문을 연 유서깊은 와이너리다. 포도밭은 도나우 강가 경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급경사면이어서 일조량이 많고 배수가 용이하다. 또 강변에 위치해 자갈과 모래 등 토양이 다양해 미네럴리티가 뛰어나다. 이 와이너리의 그뤼너 벨트리너의 맛은 청사과 향이 강하다. 여기에 허브나 백후추향이 마무리를 해준다. 상큼함은 위도가 높은 캄프탈에 견줘 다소 떨어지지만 우아함이나 미네랄티가 좋다. 바하우 지역은 그뤼너 벨트리너뿐 아니라 리슬링 산지로도 알려져 있다.
그뤼너 벨트리너는 다른 화이트와 마찬기지로 생선이나 새우같은 해산물 요리와 베스트 매칭이다. 그렇지만 쇼비뇽 블링과 리슬링의 장점을 두루 갖춰 피자나 파스타와 같은 이탈리아 요리, 스피이시한 태국·중국 요리와도 잘 어울린다. 매운 맛이 강한 한식 요리와도 잘 어울린다. 거기에다 산도와 당도가 좋고 백후추맛까지 갖추고 있어서 가벼운 소스를 사용한 닭이나 돼지고기 요리와도 조화롭다. 그뤼너 벨트리너는 어느 자리에나 잘 어울리면서도 우아함을 끝까지 잃지 않는 팔방미인이다.
* 권은중 전문기자는 <한겨레> <문화일보> 기자로 20여 년 일하다 50세에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의 ‘외국인을 위한 이탈리아 요리학교(ICIF)’에 유학을 다녀왔다. 귀국 후 <경향신문>, <연합뉴스> 등에 음식과 와인 칼럼을 써왔고, 관련 강연을 해왔다. 『와인은 참치 마요』, 『파스타에서 이탈리아를 맛보다』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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