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주동일·최홍 기자] 가상자산거래소가 여러 은행과 제휴할 수 있도록 제도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거래소 시장의 독과점 체제를 더 강화하고 자금세탁 대응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14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은행들은 지난 9일 국민의힘-은행장 간담회에 참석해 가상자산 거래소 한 곳과 여러 은행이 제휴를 맺을 수 있게 해달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현재 국내에선 ▲업비트-K뱅크 ▲빗썸-KB국민은행 ▲코인원-카카오뱅크 ▲코빗-신한은행 ▲고팍스-전북은행으로 5대 원화거래소가 은행과 제휴를 맺고 있다.
2021년 특정금융정보거래법(특금법) 시행에 따라 국내 거래소들은 ‘원화거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은행과 제휴를 맺고, 실명 인증 계좌를 발급받아야 한다.
실명인증 계좌를 통해 가상자산 거래자들의 신원을 확인하고, 궁극적으로 자금세탁 등의 범죄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당시 거래소들이 은행과 제휴를 맺는 과정에서 ‘1거래소-1은행 체제’가 관행처럼 굳어졌다.
실명계좌 목적은 ‘벌집계좌’를 막고 자금세탁을 방지하는 데 있었을 뿐, 한 거래소가 여러 은행과 제휴하는 방안은 주요 고려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거래소와 은행들 사이에서 ‘1거래소-다은행’ 체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는 금융당국 정책에 따라 법인의 가상자산 거래가 가능해지면서 시장 규모가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 나와서다.
거래소 입장에서는 여러 은행과 제휴를 맺게 되면 고객 유치에 대한 확장성이 더 커질 수 있다. 특히 개인회원은 인터넷은행, 법인회원은 시중은행에서 계좌를 발급 받는 등 은행별 강점을 고려해 전략을 짤 수 있다.
은행 입장에서도 2030세대가 많은 가상자산 투자자들을 고객으로 유입할 수 있다는 비재무적 장점이 생긴다. 또 요구불 계좌 자금이 많아지면서 자금 조달 비용이 낮춰지고, 예대금리차가 커져 수익성이 좋아지는 재무적 효과도 있다.
반면 우려섞인 시선도 있다. 1거래소-다은행 체제가 특정 거래소의 독과점을 더 심화시킬 수 있는 데다, 자금세탁방지 대응 체계도 취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은행들이 규모가 큰 거래소와 제휴하길 선호하면서 대형 거래소에 더 많은 회원과 자금들이 유입되고 독과점이 심화될 수 있다. 현재 국내 거래소 시장에선 업비트가 약 70%의 시장을 차지하고 있다.
아울러 비교적 작은 원화거래소뿐 아니라, 아직 은행과 제휴를 맺지 못하고 코인 간 거래만 운영하는 ‘코인마켓 거래소’들의 소외가 심해질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자금세탁 방지를 어렵게 만든다는 우려도 있다. 현재 한 은행에서 1000만원 이상을 입금하면 고액 현금 거래 보고가 이뤄져 모니터링이 가능한데, 세 은행으로 330만원씩 나누는 식의 편법을 통해 이를 우회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당국도 이를 고려해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여러 은행을 제휴하는 것에 대한 단점도 뚜렷하다”며 “아직은 고민하는 단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