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임철휘 기자 = 미국과 일본의 관세 담당 장관이 한국 시간으로 17일 미국에서 처음 만나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간다. 일본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비관세 장벽’으로 지목한 수입산 자동차와 농산물에 대한 규제·보조금, 환율 문제 등에서 미국의 압력을 버틸 수 있을지 주목된다.
16일 일본 공영 NHK 등에 따르면 일본 측 관세 담당 각료인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은 이날 미국으로 출국해 한국 시간으로 17일 현지에서 미국의 관세 조치에 관한 첫 미일협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미국 측에서는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협상에 나선다.
일본 정부는 대규모 투자를 통해 미국 경제와 고용에 기여해왔다는 점을 강조하며, 관세 조치의 재검토를 강하게 요구할 방침이다.
동시에 미국 측 요구사항을 신중히 청취하고 일본 국익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협상을 이끌겠다는 계획이다.
출국 전 아카자와 경제재생상은 공항에서 기자들에게 “무엇이 국익에 도움이 될지 고민해 철저히 지키겠다”며 “협상은 신뢰가 중요하다. 베선트 장관 등과 신뢰관계를 쌓아 양국 모두에 이익이 되는 결과를 도출하겠다”고 밝혔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이날 정무관(한국 차관급에 해당) 회의에서 중소기업 등 국내 산업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파악하고 정부 전체가 정보를 공유하며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이시바 총리는 “조치 내용이 명확하지 않다”며 “각 지역에서 어려움을 청취하고 지원 제도를 숙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日, 대미 협상 앞두고 ‘비관세 장벽’ 정비…자동차·농산물에 초점
일본 정부는 이번 협상을 앞두고 미국 측이 비관세 장벽이라고 주장해온 규제와 보조금 제도 정비에도 착수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이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발표한 무역장벽 보고서에서 일본의 각종 규제가 미국산 자동차의 일본 시장 진입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한 데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에서 미국차를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수입차 규제 완화를 위해 자동차 안전성 인증제도 개선과 충돌 테스트 기준에 미국 기준을 병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농산물 분야도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USTR은 일본의 쌀 고관세와 복잡한 유통 시스템을 문제 삼으며, 미국산 쌀이 일본 시장에 원활히 유통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는 쌀값 급등에 대응해 미국산 쌀 수입 확대도 검토하고 있다.
◆환율이 협상 ‘카드’…엔저 조정 가능성?
이번 협상에서는 엔/달러 환율가 핵심 카드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엔저가 미국 제조업의 수출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이에 일본 정부는 미국이 환율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재무성의 국제 부문 책임자인 미무라 아쓰시 재무관을 아카자와 장관과 함께 파견했다.
닛케이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엔저 조정이 수입물가 상승을 완화하고,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판단에도 여유를 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일본은행 내부에서는 “엔저 조정이 인플레이션을 완화해 정책 결정에 시간을 벌어줄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입 물가가 억제되면 기업의 원가 부담과 국민의 생활비가 줄고, 실질임금 증가로 소비심리 회복도 기대된다.
다만 양국이 외환시장에 공동 개입하더라도 효과는 미지수다. 특히 달러 약세 유도는 G7의 ‘자의적 환율 조정 금지’ 원칙과 충돌할 수 있다.
일본 재무성 관계자는 닛케이에 “미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는 아직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NHK는 “미국 측이 어떤 요구를 할 것인지에 따라 결정되는 구도”라면서도 “재무성 안에서는 미국의 무역적자 해소 수단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장벽이 매우 높다는 견해가 있다”고 전했다.
이밖에 미국이 관세와 방위비를 연계한 ‘패키지 딜’을 추진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일 안보조약이 불공평하다며 일본의 방위비 부담을 지속적으로 문제 삼아왔다.
일본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8%까지 늘린 방위 예산을 더 확대하고, 주일미군 주둔 경비도 추가 부담하라는 요구를 받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일본 측은 일본이 2022년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계기로 당시 GDP의 1% 수준이었던 방위 예산을 올해 1.8%까지 꾸준히 늘려왔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