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김진배 기자]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이 법제화 될 전망이다. 금융위원회가 기존 가상통화 관련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을 법제화한 후 폐지할 계획을 밝힌 것이데, 이를 두고 암호화폐 관련 정부의 정책이 더 완고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7일 금융위원회는 금융행정지도 정비계획을 발표했다. 현 39건의 행정지도에 대한 처분을 결정한 것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행정지도 8건이 폐지 대상이 됐으며 9건은 유지, 법제화 후 폐지 되는 것은 22건이다. 이 중 가상통화 관련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은 법제화 후 폐지대상이 됐다. 해당 가이드라인의 유효기간이 오는 7월 9일까지인 만큼 법제화가 빠르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암호화폐 관련 법규가 처음으로 생겨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을 수 있으나 실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관련 산업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자금세탁 방지 가이드라인이 법적 근거 없이도 이미 시장을 크게 위축시켜왔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4대 거래소에만 실명확인 가상계좌가 발급되고 있어 대부분이 어쩔 수 없이 벌집계좌를 이용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지난해 농협은 코인이즈가 “벌집계좌를 사용해 자금세탁이나 보이스피싱 등 범죄에 매우 취약하고 해킹 위험에 노출돼 있다”면서 법인계좌 입금정지를 통보했다. 코인이즈는 당시 농협의 처분에 대해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이를 인용하며 거래소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법원은 인용 결정 이유에 대해 ‘농협이 입금 정지를 통보할 법적 근거가 없음’을 들었다. 가이드라인은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설명이다. 최근 은행에서 여러 이유로 입금정지 통보를 받은 거래소들이 큰 걱정을 하지 않았던 것도 코인이즈의 선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 법제화로 법정화폐 통한 암호화폐 거래 불가능할 수도
변호사들은 해당 처분으로 인해 비슷한 소송이 진행되면 은행이 승소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 전망했다. 박주현 변호사(법무법인 광화)는 “가처분 소송에서 은행이 패소한 이유가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며 “법률에 근거를 두면 은행이 승소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벌집계좌 이용 자체에 대한 제한 가능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박 변호사는 “법제화가 된다면 벌집계좌가 없어질 가능성도 있다”면서 “다만 법적 안정성을 해치지 않기 위해 다른 방안이 추가적으로 나올 것”으로예상했다.
최악의 상황으로 간다면 원화를 통한 암호화폐 거래가 불가능하게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암호화폐 시장을 통제하고자 한다면 실명확인 가상계좌도 벌집계좌처럼 차단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구태언 변호사(테크앤로)는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과 같은 내용이 특정금융거래보고법에 들어가면 약관보다 법이 우선되어 벌집계좌 이용을 차단할 수 있게 된다”면서 “심할 경우 실명계좌도 차단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거래소의 모든 법정화폐 마켓이 차단될 수 있다”면서 “이럴 경우 원화 출금이 불가능해 P2P 거래만 가능하게 될 것”이라 말했다.
◆ 정부 변화 없이는 사업 어려워… 거래소 줄도산 가능성
가이드라인 법제화로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될 암호화폐 거래소들은 “설마 거래를 완전히 금지하겠냐”고 반문하면서도 만일의 사태에 대한 걱정을 숨기지 않았다.
특히 벌집계좌를 이용하는 거래소들의 근심이 컸다. 가이드라인 법제화로 실명확인 가상계좌 발급이 더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벌집계좌 이용까지 막는다면 사업을 이어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거래소 관계자는 “자금세탁 방지를 위해 가능한 최대한의 KYC를 진행하고 있으며 거래소 보안을 위해서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면서 “그럼에도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을 이유로 실명확인 가상계좌를 발급해주지 않고 있는데 법제화가 된다면 실명확인계좌 발급이 더 어려워지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만발의 준비를 갖추고 기다려도 국내에서 관련사업을 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고 한탄했다.
자금흐름이 좋지 않은 중소형 거래소는 대부분 문을 닫게 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원화마켓이 막혀 비즈니스를 진행하기가 매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또 다른 거래소 관계자는 “이번 법제화는 사실상 암호화폐 거래소 문을 닫게 하려는 의지의 표출이 아닌가 싶다”면서 “거래소들이 대응을 준비하고는 있지만 원화마켓이 막힐 경우 거래소들이 사실상 줄도산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블록체인-암호화폐 분리 정책에 업계는 다시 한 번 출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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