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정윤재] 이더리움(ETH) 네트워크의 거래 순서와 블록 구성 방식이 기존 금융 규제에 적절한지에 대한 논의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벤처 투자사 패러다임(Paradigm)이 MEV(Maximal Extractable Value)를 옹호하는 보고서를 공개했다. 패러다임은 최근 SEC(미국 증권거래위원회) 커미셔너 헤스터 피어스(Hester Peirce)가 제시한 48개 질의에 대한 응답 형태로 보고서를 작성하며, MEV가 자율적이고 기술 기반의 해결 과정을 통해 충분히 해소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패러다임은 MEV를 “블록체인 시스템 내 경제적 인센티브의 산물”로 정의하며, 특정 행위가 시장 조작이나 내부자 거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MEV가 블록 공간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수수료 급등과 정체 현상을 완화하는 수단이 된다고 덧붙였다.
MEV, 블록체인의 구조적 특징
MEV는 원래 이더리움 작업증명(PoW) 시절 “마이너 추출 가치(Miner Extractable Value)”에서 출발했다. 당시 채굴자는 특정 거래를 블록에 넣거나 순서를 조정해 추가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이후 이더리움이 지분증명(PoS) 체계로 전환하면서, MEV는 “최대 추출 가치(Maximal Extractable Value)”로 개념이 확장됐다. 이제는 채굴자뿐 아니라 블록 제안자, 블록 제작자, 서치봇 등이 관련된 블록 생산 체계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현재 이더리움은 ‘제안자-제작자 분리(PBS)’ 구조를 통해 블록 제작을 최적화한다. 서치봇은 거래풀을 분석해 수익 가능성이 높은 거래 묶음(번들)을 구성해 블록 제작자에게 전달한다. 블록 제작자는 가장 수익성이 높은 블록을 만들고, 제안자인 검증자에게 이를 입찰해 블록으로 채택되도록 한다. 이 일련의 과정은 12초마다 반복되며, 이더리움 네트워크 상의 거래 정렬과 수수료 분배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패러다임은 이 구조가 중앙화 없이 거래 순서를 결정하는 효율적 시스템이라며, 블록 제작을 경쟁 기반의 시장으로 바꾸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더리움은 하나의 거래풀을 갖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분산된 노드마다 각자의 거래 대기목록(멤풀)을 갖기 때문에, ‘먼저 온 순서’ 방식이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이 패러다임의 주장이다.
다양한 MEV 유형과 시장 기능
보고서는 △탈중앙 거래소 간 차익거래 △대출 프로토콜의 청산 △프론트런 및 샌드위치 공격 등 여러 형태의 MEV를 분석했다. 패러다임은 특히 차익거래(arbitrage) 형태의 MEV가 전체 MEV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가격 왜곡을 해소하는 데 기여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자동 청산을 통해 대출 프로토콜의 건전성을 유지하며, 블록스페이스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주체에게 할당하는 구조를 만든다고 강조했다.
샌드위치 공격 등 일부 MEV는 사용자에게 불리할 수 있지만, 패러다임은 기술 발전이 이러한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고 봤다. 예를 들어 ‘Flashbots Protect’, ‘MEV Blocker’와 같은 도구는 사용자의 거래 정보를 보호하고 수수료 환급 기능을 제공해 MEV의 피해를 줄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블록 제작자 중심화 문제를 방지하기 위한 기술로 ‘BuilderNet’ 같은 분산형 블록빌더 네트워크도 등장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는 TEE(신뢰 실행 환경)를 활용해 여러 운영자가 하나의 빌더를 공동 운영하는 구조로, 블록 제작의 탈중앙화와 효율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방식이다.
법적 쟁점, 기존 증권법 적용 어려워
패러다임은 MEV를 증권 사기, 내부자 거래, 최선집행 위반으로 보는 일부 우려에 대해 “해당 법적 기준을 충족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먼저, 증권거래법 10(b) 조항이나 규칙 10b-5는 시장을 오도하는 ‘속임수’나 ‘허위 정보’를 통한 행위를 처벌하는데, MEV는 공개된 정보를 기반으로 한 경제 행위라는 점에서 해당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예를 들어 샌드위치 공격의 경우, 공개된 멤풀 정보를 활용한 경쟁일 뿐 허위의 거래를 생성하거나 시장을 기만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또한 내부자 거래 성립을 위해 요구되는 ‘신뢰관계 기반의 정보 남용’ 요건도 해당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블록체인에서 거래 정보는 공개되며, MEV 행위자는 사용자의 사적 정보를 탈취하거나 신뢰를 위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선집행 의무와 관련해서도, 비수탁형 DeFi 지갑이나 거래소는 기존 중개인(broker-dealer)과 달리 법적 의무를 지지 않으며, 따라서 해당 법이 적용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만 SEC 등록 브로커가 DEX를 활용해 고객 거래를 중개하는 경우에는 MEV 위험을 인지하고 회피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규제는 기술 발전 따라가야
패러다임은 규제가 MEV 생태계의 자율적 발전을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적 혁신이 이미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으며, 현재는 유동적인 생태계이므로 고정된 규제보다는 유연한 원칙 중심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탈중앙성과 사용자 접근성 확보를 위해, MEV의 존재 자체보다는 그 대응 방안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규제가 오히려 탈중앙화를 위협하고 기술 발전을 저해할 경우, 장기적으로 시장 효율성과 공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패러다임은 “기술 중립적이며, 혁신을 촉진하는 방향의 원칙 중심 규제”를 제안하며, 증권거래위원회가 MEV 관련 정책을 검토할 때 이 같은 방향을 고려해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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