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박솔] ‘정보 과잉 시대’에 영지식 증명(Zero-Knowledge Proof, ZKP)이 “드러내지 않고 증명하는” 해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는 이제 ‘정보 과잉 증명’의 시대에 살고 있다. 나이, 소득, 학력, 자격, 국적 등 민감한 정보를 반복적으로 제출하며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환경 속에서,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고도 진실을 증명할 수 있다면?’이라는 물음은 점점 더 현실적인 고민으로 다가온다. 이런 고민에 대한 해답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영지식증명(Zero-Knowledge Proof, ZKP)이다.
영지식증명은 “증명하되 드러내지 않는다”는 암호학의 정수를 담고 있는 기술로, 기존의 신뢰 구조를 넘어서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 ZKP의 핵심 원리: 완전성, 건전성, 영지식성
영지식증명은 어떤 문장이 ‘참’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면서도 그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암호 기술이다. 여기에는 두 명의 주체가 등장한다. 어떤 문장을 증명하려는 증명자(Prover)와, 그것이 진실인지 검토하는 검증자(Verifier) 다.
이 구조는 세 가지 핵심 원리를 기반으로 작동한다.
- 완전성(Completeness): 만약 문장이 참이라면, 정직한 증명자는 이를 언제든지 검증자에게 설득력 있게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 건전성(Soundness): 문장이 거짓일 경우 어떤 부정직한 증명자도 검증자를 속일 수 없어야 한다.
- 영지식성(Zero Knowledge): 검증자가 문장이 ‘참’이라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을 뿐, 그 외의 정보는 전혀 얻을 수 없게 만든다. 예를 들어, “나는 18세 이상이다”는 사실만을 증명하고, 실제 생일은 공개하지 않는 방식이 여기에 해당한다.
# ZK-SNARK와 ZK-STARK: 영지식증명의 실전 기술
ZK-SNARK(Zero-Knowledge Succinct Non-Interactive Argument of Knowledge)와 ZK-STARK(Zero-Knowledge Scalable Transparent Argument of Knowledge)는 이러한 영지식증명을 실제로 구현한 두 가지 대표적인 기술이다. 이들은 모두 비대화형(Non-interactive) 방식으로, 증명자가 단 한 번의 증명서 제출만으로 진실을 입증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이로 인해 여러 차례 상호작용을 거치지 않아도 되며, 속도와 효율성이 대폭 향상된다.
특히 블록체인 환경에서는 처리 속도, 개인정보 보호, 확장성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어 이 기술들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ZK-SNARK는 짧고 빠른 증명서를 생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매우 효율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증명 크기가 작고 검증 속도도 빨라, 거래 내역 전체를 기록하지 않고도 “정상적인 거래였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어 수수료는 낮추고 속도는 높일 수 있다. 다만, ZK-SNARK는 ‘초기 설정(Trusted Setup)’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생성되는 암호학적 기초 데이터는 일종의 비밀 키로 작용하며, 만약 해당 데이터가 유출되거나 조작될 경우 전체 시스템의 신뢰성이 무너질 수 있는 잠재적인 위험이 존재한다.
반면, ZK-STARK는 이러한 초기 설정 자체를 제거한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별도의 사전 설정 없이도 안전하게 증명을 생성할 수 있어 시스템의 투명성과 보안성을 높이는 데 유리하다. 또한 해시 함수 기반 구조 덕분에 양자 컴퓨터 환경에서도 깨지지 않는 보안성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기술로 평가받는다. 단, ZK-STARK는 증명 크기가 크고 계산 비용이 높다는 특성이 있어, 블록체인에 기록할 때 수수료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한계도 있다.
실제 사용 사례를 보면, ZK-SNARK는 속도와 가벼움이 중요한 서비스들 — 예를 들어 프라이버시 코인인 Zcash, 탈중앙화 거래소 Loopring, 프라이버시 보호 중심 DeFi 프로젝트 Aztec 등에 활용되고 있다. 반면 ZK-STARK는 높은 보안성과 확장성이 요구되는 Layer 2 플랫폼에서 많이 사용되며, StarkNet과 StarkEx 같은 프로젝트는 DeFi, NFT, 게임 분야 등 다양한 영역에서 빠르게 확장 중이다.
#알리바바 동굴: 영지식증명의 핵심 원리
‘알리바바 동굴(Ali Baba’s Cave)’ 이야기를 통해 영지식증명의 개념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동굴 안에는 두 갈래 길이 있고, 그 사이에는 특정 주문으로만 열리는 비밀문이 있다. 참가자는 이 주문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지만, 주문 자체는 절대 공개할 수 없다. 참가자가 동굴 입구에서 A 또는 B 방향 중 하나로 들어가면, 바깥의 심사위원은 “A로 나와라” 또는 “B로 나와라”라고 무작위로 요청한다.
만약 참가자가 진짜 주문을 알고 있다면, 어느 방향으로 들어갔든 비밀문을 열고 원하는 방향으로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주문을 모르는 경우에는, 참가자가 우연히 요구된 방향으로 들어갔을 때에만 성공할 수 있다. 이 확률은 50%이며, 이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게 되면 진짜로 주문을 알고 있는지 여부에 대한 신뢰는 점점 높아지게 된다.
참가자는 영지식증명에서의 증명자(Prover)이고, 심사위원은 검증자(Verifier)에 해당한다. 비밀문을 여는 주문은 감춰진 정보(예: 비밀번호, 나이, 자산 상태 등)이며, 심사위원은 이 정보를 알 수 없지만, 참가자가 그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만은 확신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영지식증명은 ‘드러내지 않고도 진실을 증명하는’ 방식이며, ZK-SNARK와 ZK-STARK는 이러한 구조를 디지털 환경에서 실현하는 기술이다.
#디지털 신뢰 시대의 핵심, 영지식증명
결국 ZK-SNARK와 ZK-STARK는 모두 ‘정보를 숨기면서도 믿게 만드는’ 디지털 신뢰 기술이다. ZK-SNARK는 빠르고 실용적이지만 초기 설정이라는 보안상의 불안 요소가 있으며, ZK-STARK는 초기 설정이 없고 더욱 안전하지만 비용이 더 든다는 특징이 있다.
앞으로 영지식증명은 ‘선택적 투명성’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데이터 보호와 신뢰를 동시에 실현하는 기반 기술로서, 탈중앙화 시대의 디지털 신뢰 구조를 재편할 핵심 열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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