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록체인은 역사 속 거대한 흐름.. 인터넷 뛰어넘는 문명의 진보
– 규제는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 유연함 갖춰야
[블록미디어 명정선 기자.문정은 기자 ] “블록체인은 르네상스나 산업혁명, 근대 자본주의 태동과 같은 역사 속 거대한 흐름이자 인터넷 혁명 보다 더 큰 문명의 진보입니다.”
“(미래의 핵심동력은) 결국 정보입니다. 이 정보가 어디에 모이느냐, 그리고 정보들이 어떻게 가공되느냐가 중요한 핵심인데 우리는 이를 간과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의정부 지방법원 부장판사이면서 430여명에 달하는 학자, 기업가, 법조인들이 모여있는 블록체인 법학회를 이끄는 이정엽 회장은 “비트코인은 우리 머릿속에만 있던 정보나 성과에 대한 모호한 개념을 자본화한 첫번째 사례”라며 “블록체인 기술이 정보의 자본화라는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거 산업혁명을 겪은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의 운명이 갈렸듯 앞으로 토큰으로 가는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의 미래는 전혀 다를 것이라는게 그의 설명이다.
이정엽 블록체인법학회 회장을 만나 블록체인의 미래와 현재에 대한 그의 의견을 들어봤다.
다음은 이 회장과의 일문일답.
– 블록체인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정보보호법 학회 활동을 하거나 정보와 관련된 책을 읽어 왔기 때문에 블록체인이나 비트코인에 익숙해질 수 있었습니다. 저처럼 일부러 탐구하지 않는 이상 대부분 비트코인을 보면 어색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암호화폐나 블록체인이란 단어가 매우 추상화되어 있고 개념적으로 느껴지니까요.”
–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 궁금합니다.
“비트코인은 유전에서 원유를 생산해내는 기술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유전이 있다고 해서 모두 돈이 되는 건 아니에요. 원유를 뽑아낼 수 있는 정보와 기술이 있어야 가치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비트코인도 마찬가지 입니다. 지금은 정보가 돈이라고 하잖아요. 그 정보를 가치로 바꾸는 기술적인 해법을 보여준 첫 사례입니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한 기술이 블록체인이고요.
사회는 사람들 머릿속에만 맴돌던 정보들이 공식이나 개념으로 추상화될 때 크게 도약합니다. 일례로 경제사학자들은 영국 자본주의가 발달하게 된 원동력으로 등기부를 이야기합니다. 토지가 등기부 상에 올라가면서 자본이란 개념이 형성된 거죠. 이를 토대로 공장도 만들고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부를 축적했습니다.
영국에서 등기부가 생기고 나서 그동안 없던 자본이 탄생한 것처럼 지금 우리는 정보의 자본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기회를 잘 활용하면 우리도 새로운 자본을 만들면서 도약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해요. 한 사람만의 노력으로는 어렵고 개발자, 금융, 경영, 인문, 법조인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블록체인 법학회도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겁니다.”
– 추상적이라고 하면 왠지 실제 가치가 없다고 느끼기 쉬운데요.
“시스템적으로 추상화될수록 고도화된 사회라는 것을 인지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애플 아이폰을 생각해볼까요. 애플은 뒷면에 디자인드 바이 캘리포니아라고 쓰여 있습니다. 직원은 13만명 정도 된다고 하죠. 하지만 그 핸드폰을 실제 만드는 곳은 폭스콘, 대만과 중국에 공장이 있고 노동자만 100만명에 달해요. 아이러니 한 사실은 폭스콘은 아이폰을 만드는 공장이나 설계도를 모두 갖고 있는데 정작 자본은 애플에 집중되어 있다는 겁니다. 추상화된 시스템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실물은 큰 의미가 없어요. ‘아. 애플이 만든 거’ 디자인과 설계도를 누가 만들었다는 그 개념이 중요한 겁니다. 얼마 전 모나리자 그림을 토큰화한다는 뉴스가 나왔더군요. 미술품을 토큰화한다는 것은 추상화한다는 것입니다. 미술품을 자본화시킨다는 것. 그것이 실물을 지배하는 겁니다.
자본시장에서 추상의 능력은 더욱 더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2008년 금융위기 원흉으로 꼽혔던 파생상품, 1억 달러를 증거금으로 하는 파생상품에 레버리지를 더하면 50억달러까지 불어난다고 하죠. 이런 얘기를 들으면 사람들은 1억달러는 진짜고 49억달러는 가짜라고 비난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추상화된 능력입니다. 1억 달러에 붙은 49억달러가 레버리지라고 해도 그것은 시장에서 작동하는 돈이니까요. 실제로도 파생상품이 실물시장을 좌지우지합니다. 우리는 정보에서 캐낸 자본으로 실물을 모두 살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겁니다. 토큰으로 가는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는 앞으로 전혀 달라질 겁니다. 산업혁명을 겪은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미래가 다르게 펼쳐졌던 것처럼요.”
– 토큰이코노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정보가 돈이 된다는 것도 중요하죠. 하지만 중요한 정보가 있고, 중요하지 않은 정보도 있습니다. 금융이나 헬스, 이런 정보의 가치를 평가해줘야 하는데 누가 이를 평가하고 어떻게 가치를 산정할까요. 결국 평가를 하는 주체는 네트워크이고 가격이란 결과로 반영됩니다. 좋은 정보는 비싸게 팔릴 것이고 나쁜 정보는 팔리지 않겠죠.
이 때 정보를 가공하고 수학적으로 가치를 산출해내는 일이 필요한데 저는 그것을 토큰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를 거래소로 가져가 법정화폐와 교환하면 없던 자본이 탄생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거래 플랫폼은 산업경쟁력 차원에서 정말 중요한 분야입니다.”
– 거래소 플랫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디지털자산 거래소에 대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정보는 돈인데 이 정보가 어디에 모이느냐, 그리고 정보들이 어떻게 가공되느냐를 생각해보면 결국 플랫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를 간과하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거래소는 모든 정보 자산이 모이는 곳인데 말이죠.
우리에게도 바이낸스나 코인베이스를 뛰어넘을 거래소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네트워크를 장악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제 구글 네이버, 바이두 몇 개 안 남았어요. 거래소도 네트워크 효과를 최대화하려면 어느 정도 독점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블록체인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지금 다 처음입니다. 규제가 없지요. 우리도 스스로 만들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선도적인 미국에서 따라가려고 하는 것 같아요. 문제는 네트워크는 기술과 달라서 한번 시기를 놓치면 따라잡기 힘들다는 겁니다. 우리가 지금 페이스북 사이트나 서버 만드는 기술이 없어서 네트워크를 구축하지 못하는 건 아니자나요. 글로벌 기업들이 네트워크를 장악하기 위해 경쟁을 하고 있는데 우리의 상황을 보면 안타까워요. 하지만 늦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이라도 기준을 만들고 플랫폼 산업의 경쟁력을 키워야 해요”
-페이스북 리브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리브라 플랫폼 역시 매우 중요한 이벤트입니다. 리브라가 경제 플랫폼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스타벅스나 쿠팡은 포인트를 주는데 쿠팡의 경우 1년에 5% 캐시백으로 줍니다. 10만 원 정도 쓰면 5% 돌려받는 거죠. 10만 원 저축하면 5% 이자로 받은 것과 같아요. 하지만 법정화폐로는 가능하지 않죠. 그런데 이 포인트를 페이스북이 준다고 생각해보세요. 게다가 그 포인트를 웬만한 마트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제휴를 맺는다고 하면 게임 끝입니다. 금융과 IT의 경계요? 이미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규제라는 걸림돌이 있는데요.
“규제는 상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완전한 것은 없어요. 탈중앙화 이야기하는데 중앙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마찬가지로 범죄가 없어지는 일도 없습니다. 익명성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 독립자금도 일본 정부에게는 범죄자금으로 여겨졌습니다. 어느 정도의 익명성은 필요합니다. 자금세탁방지기구(FATF)에서도 1,000유로 이상일 때 보고 하라는 것은 그 이하에서는 유연함을 보여준 겁니다. 아예 범죄를 없애겠다는 것은 지나친 집착이죠. 암호화폐 거래금지 등으로 강하게 억압하면 없어질 것 같지만 오히려 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커요. 규제는 현금 거래보다 좀 더 투명한 수준으로 맞추면 된다고 봅니다. 마약도 마찬가지입니다. 병원에서는 마약성 진통제가 없으면 안 됩니다. 용도에 맞게 써야지요. 범죄라는 것은 그 시대의 네트워크가 규정한 겁니다.”
– 정부의 입장이 달라질까요.
“정부의 스탠스나 사고방식이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시대는 달라졌는데 그에 맞는 법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다는 것도 공감합니다. 하지만 저는 블록체인이 정말 큰 기회라고 생각하고 우리가 잘 잡았으면 좋겠어요. 미국 트럼프 행정부 내각의 재산을 합하면 1조달러라고 하죠. 이런 뉴스를 보고 사람들은 미국을 욕해요 하지만 욕먹어도 미국 경제가 제일 좋아요. 완전고용 상태입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사람들이 일은 열심히 했는데 살기가 정말 좋아졌는지 모르겠어요. ‘가난하지만, 화목해서 행복해….’라는 말은 위로가 되지 않는 시대에요. 여전히 암호화폐를 둘러싼 사기가 많고 일각에서 암호화폐의 95%가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산업이 사라지는 건 아니고 망한 95%가 의미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 당국을 비롯한 많은 분과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 앞으로의 포부나 계획이 있다면.
“블록체인은 단순히 기술 혁신을 넘어섭니다. 르네상스나 산업혁명, 근대 자본주의의 태동과 같이 역사 속 거대한 흐름이라고 확신합니다. 인터넷 혁명보다 더 큰 문명의 진보라는 측면에서 기술을 뛰어넘는 하나의 시대흐름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요. 그래서 블록체이니즘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블록체이니즘으로 말할 수 있는 드라마가 나오고, 그림. 조각, 소설이 나와야 합니다. 개발자 뿐만 아니라 각계 전문가와 네트워크가 모여서 암호화폐를 어떻게 만들고 유통할 것인지, 네트워크의 합의를 통해 민주주의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고 싶습니다.”